먼저 레시피를 하나 소개한다. 준비물은 애호박 한 개, 전분, 소금, 건새우(없으면 새우과자), 식용유다. 먼저 애호박을 얇게 채를 썰고 소금을 넣고 한 15분 재운다. 건새우를 갈아넣으면 감칠맛이 올라온다. ‘바사삭’ 느낌이 날 때까지 부치면 끝이다. 신묘한 요리다.

나는 이 호박부침개는 수개월째 먹지 못하고 있다. 900원대에 팔기도 한 애호박이 2000~2600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2000원이 넘는 애호박을 사먹을 용기가 나에겐 없다. 1000원짜리 요리와 궁상스러운 장보기 이야기는 사실 나의 레퍼토리다. 주로 샐러리맨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수억씩 오른 집값에 대한 한탄이나 공공기관 임원들의 억대 연봉이 이슈가 될 때 나는 이 레퍼토리를 풀어낸다. 2000원짜리 상추가 5000원이 넘어갔을 때는 상추가, 금값이 돼 수개월째 맛보지 못했던 대파가 애호박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 궁상스러운 이야기는 ‘기후위기’를 말하며 나의 생활습관을 바꾸려는 지인들에게 맞설 때도 쓰인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된다는 얘기부터 시작된 기후위기가 1인당 탄소배출량(한국 연간 1인당 이산탄소배출량은 11.6t, 세계 4위)까지 번져나갈 때쯤에는 나는 나의 레퍼토리를 꺼내 든다. “애호박 하나에 3000원이다. 먹고살기 힘들다. 100년 뒤 지구가 망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도대체 뭐가 중요한가?” 나의 말에 결국 대화는 중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둘 중에 하나다. 나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거나 혹은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됐거나. 물론 “온난화는 과장됐으며 돈이 많이 들고 효과가 적은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보다는 기아·가난 등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비오른 롬보르 덴마크 코펜하겐대 경영대학 교수의 주장을 곁들여 권위를 더할 때도 있다. 그린피스 활동가였던 그는 개발론자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비주류 환경론자가 된 인물이다. 이 교수가 쓴 ‘회의적 환경론자’은 아직도 논쟁적이다.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1997년)와 파리협정(2015년)을 채택한 국가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달 출범 후 첫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를 제시했다. 기후위기에 정부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는 아직 어릴 때 배운 ‘자연보호’ 정도의 수준의 표어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꽃을 꺾으면 죄책감이 드니, 자연보호가 오히려 규범적이다. 아직 비닐봉투를 쓸 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 역시도 둘 중 하나다. 나 같은 사람이 기 후위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거나 국민을 향한 정부의 설득이 부족했거나.

봄이 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가 쏟아진다. 일찍 핀 봄꽃에 넋을 잃고 있을 때도, 축구장 21만개 크기의 면적이 잇따른 산불로 다 타버려 안타까워할 때도, 전문가들의 종말론적 전망에 화들짝 놀란다.

전날 밤부터 봄비가 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봄비에 대해서도 기후위기를 읽어내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그러지 못한다. 비가 내리면 나는 떠나간 사람과 애호박부침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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