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의 오차도 없는 각잡힌 몸짓
수개월 연습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통 재해석·재창조 화합 메시지
“아이돌 나오세요.”
신호가 들리면 기막히게 제자리를 찾는다. K-팝 군무를 추듯 각 잡힌 몸짓, 그 안으로 응축된 에너지가 비장하다. 바닥까지 내려오는 폭 넓은 소매의 전통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어깨를 뒤틀고, 왁킹을 하듯 팔을 휘젓는다. ‘촤라락’ 떨어지는 소매자락 소리, 등 뒤로 포개지는 두 손까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숨소리의 편차’도 허락하지 않는 ‘일무’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움직임은 물론 옷자락의 펄럭임, 발과 시선의 각도, 머리카락 한 올의 흔들림까지 맞춰야 해요.” (박수정, 김성훈)
완전한 질서에 감탄은 금물.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되기가 무섭게 “짜장면이요!” 마치 짜장면을 먹는 동작 같다 해서 ‘연습의 편의’를 위해 붙은 이름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에 ‘현대적 감각’이 더해지자, 세상에 없던 ‘춤의 언어’가 생겨났다.
‘일무’(5월 25~28일·세종문화회관)가 돌아온다. 지난해 5월 초연 이후 1년 만이다. 54명의 무용수가 총출동해 다시 추는 ‘일무’는 또 한 번 진화를 거듭했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한국 무용계의 대표 창작자들이 총출동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연출을 맡았고, 서울시무용단의 정혜진 예술감독과 대세 안무가 김성훈 김재덕이 만나 ‘새로운 전통’을 보여준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안무가 김성훈 김재덕, 서울시무용단의 박수정 조황경 단원을 만나 ‘일무’로 하나되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 했다.
■ 시대에 따라 달라진 ‘몸의 언어’…동시대성 입고 태어난 전통
‘일무’는 다시 태어난 전통이다. 초연과 달라진 점이 많다. 올해의 ‘일무’는 기존의 안무(가인전목단)가 빠지고, 새로운 안무(죽무)가 추가되며 총 3막에서 4막(1막 ‘일무연구’, 2막 ‘궁중무연구’, 3막 ‘죽무’, 4막 ‘신일무’)으로 늘었다.
김성훈 안무가는 “전통을 극대화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미학적인 언어를 담는 방식으로 새로운 안무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안무는 음악이 만들어진 후 태어났다. 안무와 음악을 겸한 김재덕은 음악에서도 ‘달라진 전통’을 추구했다. ‘가장 느린 음악’인 정가에 빠른 춤사위를 구사한다. 전통의 소리들은 묘하게도 클럽이나 제3세계 음악과도 닮았다. 기존의 악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하며, 익숙하지만 낯선 소리를 만들었다. 김재덕은 “‘일무’ 음악은 미니멀과 모호함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했다.
음악에 영감을 받은 새로운 움직임은 “전통의 재해석”과 “현대적 재창조”에 방점을 뒀다. 두 안무가는 “우리 모두의 화학적 융합이 이뤄낸 결실”이라고 했다. 기존의 전통을 보여주면서, 새롭게 창작된 안무엔 K-팝부터 스트리트 댄스까지 동시대성을 입은 동작들도 눈에 띈다. 김성훈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10년 전이라면 이런 동작이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며 “몸의 언어는 한 끗 차이이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은 비슷한 영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르가 부서지는 시대의 새로운 전통은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시각을 펼칠 수 있는 힘을 가졌어요. 몸의 언어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요. 안무가에게 중요한 것은 시대성을 반영한 춤을 만드는 거예요.” (김재덕, 김성훈)
작품은 보다 친절해졌다. 두 안무가는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전통춤의 언어’를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김성훈은 “음악도 반복이 있어야 익숙해지는 것처럼, 전통의 움직임을 최대한 활용하고 반복해 익숙해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3막의 ‘죽무’는 기존엔 없던 장면이다. 큰 장대를 들고 추는 ‘죽무’는 남성 무용수들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김재덕 안무가의 재해석은 ‘현대의 전통화’ 과정을 거친다. 그는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두면서 현대적인 수식어를 넣는 것이 나의 안무 방식”이라며 “내 관점에서 현대적이고 미학적으로 볼 때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열한 것이 죽무신에 많다”고 말했다.
고난도 안무를 소화하는 무용수들의 고충이 적잖았다. 조황경은 “스피드와 힘에 있어 (다른 동작들보다) 3~4배 정도 업그레이드 됐다”고 말했다. 안무의 핵심은 “운동성을 살린 스피드”(김재덕)다.
“보통 권투에서 잽을 날릴 때에도 힘을 빼고 하는 동작이 있고, 근육을 써서 단시간에 써야 하는 동작이 있어요. 죽무의 스피드는 근육을 써서 빠르게 하는 동작이에요.” (김재덕)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호흡부터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한국무용과 현대 무용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김재덕은 “두 춤은 서로 다른 궤도와 힘의 방향을 가지고 있어 연습 과정에선 다칠 수도 있는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꽁꽁 동여맨 한복은 움직임이 적은 전통무용에 어울릴 법한데, 여성 무용수는 길고 커다란 의상에 우아함 대신 날렵한 카리스마를 채웠다. 박수정은 “전통은 전통대로 고증하되 창작은 창작대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자 숙제”라고 했다.
■ 칼군무의 미학…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시간
‘일무’는 “열과 질서를 맞춰 제사에서 지내는 의식”(박수정)이다. 무대에 서는 무용수만 해도 총 54명. 모든 장면 장면을 완성해나가는 무용수들의 연습 과정이 곧 작품의 메시지다.
박수정은 “누구 한 사람이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50여명의 무용수들이 하나가 돼야 한다”며 “나를 버리고 앞, 옆, 뒷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칼군무의 미학’을 완성하기 위해 수개월의 연습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간”이었다. 50여명이 무용수들에겐 ‘완벽 그 이상’이 요구됐다. 조황경은 “‘저렇게까지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그 일을 계속 쫓아가는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그 과정에선 엄청난 인내와 협동이 요구된다.
“나를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해요. 팔을 어깨 높이까지 수평으로 들어야 할 때 모두의 키가 다르니 옆사람과 줄이 맞으려면 누군가는 어깨보다 팔을 올려야 하고, 누군가는 살짝 내려야 하죠. 서로의 중간지점을 찾아 수평을 맞추기 위해선 양보하고 배려해야 해요.” (박수정)
‘완벽히’ 맞춘다는 것은 어쩌면 비인간성과 맞닿는다. 오차 없는 완벽의 추구는 인간보다는 컴퓨터가 낫다. 김재덕은 “똑같이 맞춘다는 것을 ‘로봇화’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며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이 안무에 생기를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두 명의 안무가는 “사실 타자와 맞춰가는 것은 배려와 양보가 필요하기에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인생에도 ‘일무’가 녹아내린다”고 봤다.
오차 없는 칼군무는 ‘일무’의 핵심. 하지만 딱 떨어지는 오와 열, 숨소리와 치맛자막까지 맞춰 ‘완벽’에 도달한 만족감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김성훈은 “이 작품에 완벽은 없다”고 말한다. “완벽의 지점을 찾는 과정”(박수정)이자, “완벽을 위해 달려가며 화합하는 힘”(조황경)을 보여주는 것이 곧 ‘일무’라는 생각이다. 완벽을 향하는 무대엔 완전한 어우러짐도 있다. 서울시무용단의 다양한 연령대의 단원들이 적재적소에 자리해, “개개인 무용수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묵직한 전통의 ‘일무’에 흡인력을 더하는 신이다.
‘일무’의 장면 장면엔 작품의 철학이 담긴다. 박수정은 “3막(죽무)의 마지막 신은 ‘일무’의 명장면”이라고 했다. 무용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다 5명이 7명이 되고, 7명이 10명이 되다, 점점 늘어 모든 무용수가 무대를 메운다.
“한 사람이 해도 되는 움직임을 왜 굳이 50여명이 할까요? 저희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화합하는 에너지와 기운이에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서와 화합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 소통이 안 되는 세상에서 한 마음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예요.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예요.”(박수정)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요즘 ‘큰손’들은 주식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11월 3일’부터 본다, 왜?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6.97fcdbca4f2c4562acc488b50990cb2d_T1.jpg?type=h&h=240)

![못 믿을 AI기업…검증하고 평가받게 하라[머브 히콕]](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3.2391f1fe070840f39f8da5e471902ef7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