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또’ 기소됐다. 이번엔 지난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관심은 트럼프의 추가 기소가 공화당 경선 레이스에 미칠 영향에 쏠리고 있다. 지난 3월 ‘성추문 입막음’ 혐의에 대한 기소를 시작으로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첩첩이 쌓이고 있지만, 기소 때마다 그의 공화당 내 지지율은 오히려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선거 결과 불복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인 데다, 잇따른 기소로 인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피로감도 커질 대로 커졌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로 경선 이슈 집어삼켜…트럼프 독주 계속되나
1일(현지시간) 연방 대배심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사기 모의와 선거 방해 모의, 투표권 방해 및 사기 등의 혐의로 트럼프에 대한 기소를 결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에도 검찰 수사가 자신을 겨냥한 ‘마녀사냥’라는 기존의 주장을 이어가면서 추가 지지율 결집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검찰 기소와 관련 “1930년대 나치 독일, 구소련 등 독재정권의 행동”이라고 비판하며 “미국스럽지 않은 이런 마녀사냥은 실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두 차례나 기소 됐지만 트럼프의 경선 지지율은 오히려 올랐다. 현 정부의 정치적 탄압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에 지지자들이 호응하면서다.
실제 지난 3월 ‘성관계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후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52%를 기록하며 2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21%)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기소 직전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와 디샌티스의 지지율이 각각 47% 3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소를 기점으로 지지율 격차가 완전히 벌어진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6월에도 국가기밀 문건을 불법 반출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당시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61%를 기록하며 직전달(58%) 대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54%의 지지율을 얻으며 여전히 디샌티스(17%)를 크게 앞서고 있다.
무당파 정치 분석가 스튜 로텐버그는 “트럼프는 (이번 기소를 이용해) 제도권 세력이 트럼프 자기 자신과 공화당을 탄압하려한다는 주장으로 지지자들을 또 결집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공화당 경선 레이스 이슈를 모두 집어 삼키고 있다. 트럼프가 혼자서 이슈를 독식하면서 나머지 후보들의 행보나 공약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존 피허리 공화당 전략가는 “트럼프에 대한 연이은 기소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경선 레이스의 돌파구를 찾는 트럼프의 경쟁자들을 가라앉히고 있다”면서 “디샌티스는 결국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美민주주의 뒤흔든 대통령…이번엔 다르다?
그럼에도 이전과 달리 이번 기소만큼은 트럼프가 정치적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의의 핵심 요소인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방해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전복을 시도했다는 것이 이번 기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NYT는 “재선에 도전하는 전직 대통령이 정부 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전복하고 유권자의 의사에 반해 대통령직을 유지하려다 기소됐다”면서 “미국 역사에서 보기 드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검찰 기소가 이어지면서 선거가 몇달 채 남지 않는 내년 초부터 트럼프에 대한 재판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성 추문 입막음 혐의 관련 첫 재판은 내년 3월 25일, 국가기밀 반출 혐의 관련 재판은 내년 5월 20일이다. 법정을 오가면서 당내 경선을 치르고, 결과에 따라 본선까지 치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선두 주자로서 앞으로 수개월간 선거 캠페인과 재판을 병행해야 하는 시험대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지지자 결집을 위한 트럼프의 주장들이 더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선이 가까워지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표심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이길 수 있는 ‘필승 카드’를 뽑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는 온건 보수와 중도·무당파까지 끌어안아야 승리하는 본선에서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거듭된 사법 리스크에 따른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가 아닌 다른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로텐버그는 “이번 기소 때문에 트럼프가 본선에서 패배할 위험이 커졌다”면서 “많은 이들이 ‘나는 싸움에 지쳤고, 트럼프에 지쳤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샌티스를 지지하는 폴 레너 플로리다주 하원의장은 “공화당 유권자들은 바이든을 이길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격적인 트럼프는 많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소는 부담” 공화당 ‘큰 손’들…트럼프와 거리두기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커지면서 공화당의 일부 큰손 후원자들은 트럼프 캠프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후원자들이 대선을 앞두고 다른 공화당 후보에게 후원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31일 발표된 상반기 연방 선거자금 공개에 따르면 공화당의 거액 후원자인 위스콘신 산업용품 도매업체 ‘유라인’의 소유주 리처드 유라인, 리즈 유라인 부부는 디샌티스에게 200만달러(약 25억원)를 기부했다. 유라인 부부는 이전까지만해도 트럼프의 대표적 후원자이면서, 1·6 의사당 폭동에 앞서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미국을 구하기 위한 행진’의 가장 큰 후원자 중 한 명이었다.
공화당 핵심 후원자이자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후원했던 석유회사 셰일의 창립자인 해럴드 햄 역시 다른 경선 주자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디샌티스에게 후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출마를 포기하라고 이야기 했으며 “내 권고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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