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룽국제신탁 베이징 본사 [로이터]
중룽국제신탁 베이징 본사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촉발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금융권으로 전이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 위기 우려의 진원지인 중룽(中融)국제신탁의 환매 중단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룽신탁발(發) 실제 피해 규모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클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현실화하면서, 부동산 시장 침체로 시작된 위기는 점차 중국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양상이다.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공시를 바탕으로 이날까지 중룽신탁에 돈을 맡겼다가 피해를 본 상장사가 최소 6곳이며 이중 5곳은 이자와 원금을 모두 지급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일찍이 중룽신탁의 환매 중단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진 3개 상장사에서 늘어난 것이다.

매체는 당초 공시를 통해 투자 피해를 알렸던 진보(金博)홀딩스와 난두(南都)물업, 셴헝(咸亨)인터내셔널를 비롯해 항저우웨이광(微光)전자와 셴펑(先锋)전자, 진팡(金房)에너지 등도 현재까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악된 추가 피해금만 1억위안(183억5600만원)에 달한다.

지난 21일 선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항저우웨이광전자는 당일 만기인 중룽신탁 상품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항저우웨이광전자는 지난 5월 연 5.4%의 수익을 약속받고 5000만위안(91억6350만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음에도 “재무상태가 건전하고 영업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튿날 오전 항저우웨이광 전자의 주가는 3.2% 하락했다.

같은날 선전증시 상장사인 항저우의 셴펑전자 역시 중룽신탁 상품 2종에 대한 이자와 함께 5000만위안의 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셴펑전자가 투자한 상품의 만기는 지난 17일이었다. 셴펑전자는 현재 중룽신탁 측에 원금과 이자 지불을 요구한 상태이며, 투자금 회수를 위한 법적 조치에 착수한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 상장사 6곳 중 투자금을 일부라도 회수한 기업은 셴헝인터내서널이 유일하다. 보도에 따르면 셴헝인터내셔널은 중흥신탁에 6300만위안(115억6428만원)을 투자했고, 원금 중 약 4분의 1이 미지급 상태다.

닛케이는 “중룽신탁의 투자금 미지급이 상장 기업들을 강타하고 있다”면서 “부동산 시장의 혼란이 더 넓은 경제로 확산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중국 안후이성의 한 건물 위에 비구이위안의 로고가 걸려있다. [AFP]
중국 안후이성의 한 건물 위에 비구이위안의 로고가 걸려있다. [AFP]

앞서 중국 10대 신탁회사 중 하나인 중룽신탁은 수십개의 투자신탁 상품의 이자 및 원급 환매를 중단했다. 규모는 3500억위안(64조원)이다. 중룽신탁은 자금의 상당 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추가 피해 사례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중룽신탁의 환매 중단 사태가 ‘탄광 속 카나리아(감지하기 어려운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징후)’이며, 최근 부동산 기업들의 잇따른 유동성 문제와 신탁업계의 신용 추락이 결국 경제 전반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란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샤오시 짱 기브칼 중국금융분석가는 “은행의 대출 부담이 높아지고, 신탁업계의 신용이 시들해지면서 손실이 금융시스템 핵심에 가까워질 것”이라면서 “부동산 개발자들의 채무 문제는 시중은행을 포함한 다른 곳에서도 표면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룽 사태 이후 가계 자산이 예금으로 쏠리고 있으며, 막대한 자금이 예금에 묶이면서 소비와 성장을 더욱 둔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자신들이 투자한 상장사들 역시 부동산 위기가 촉발한 금융권 혼란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룽신탁이 작년 말 기준 총운용자산액은 1080억달러(145조원)로 업계 전체의 3.7% 수준이지만, 투자자들은 최근의 위기가 ‘그림자금융’ 전체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레이먼드 양과 자오펑 싱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중국 수석전략가는 “시장은 다른 신탁회사들도 중룽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에 많은 투자자들이 자신이 투자한 상장사들에게 신탁업계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세부사항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