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리스크로 촉발 尹·韓 갈등
‘비명횡사’ 공천·조국혁신당 돌풍
尹 ‘대파 875원’ 논란에 민심직격
22대 총선 결과는 여당인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다. 지난해 12월 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접어든 100여 일간의 선거 국면에서, 악재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돌출하며 민심을 요동치게 했다.
한 위원장의 등판 약 3주 만에 발생한 ‘윤-한 갈등’은 총선을 뒤흔든 대표적인 변곡점 중 하나다. 야권은 지난해 말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집중 포화를 날렸고, 더불어민주당은 한 위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 28일에는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 특검법을 주도해 통과시켰다. 당내에서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확산했고, 한 위원장이 직접 영입한 김경율 비대위원은 이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올해 1월 18일 “국민의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며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며 취임 후 대통령실과 처음으로 각을 세웠다.
윤-한 갈등은 1월 21일 김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사천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폭발했다. 한 위원장은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라며 사퇴를 일축하는 한편, 이틀 후인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과 만나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갈등을 봉합했다.
2월에는 선거를 위한 공천 작업 본격적으로 단행되면서, ‘비명횡사’ 태풍이 민주당을 덮쳤다. 민주당 소속 국회부의장인 김영주 의원이 ‘하위 20%’ 통보에 반발해 탈당했고, 친문(친문재인계) 핵심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친문 좌장’인 4선 홍영표 의원도 컷오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선에서도 비명(비이재명계) 강병원·박광온·박용진·윤영찬·송갑석·전해철 의원 등이 하위 20% 평가에 따른 최대 30% 감산 페널티를 극복하지 못하고 연이어 탈락했다. 이들의 빈자리엔 친명(친이재명계) 인사가 들어섰고, 특히 ‘성범죄자 변호’ 논란으로 사퇴한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의 자리는 친명계 한민수 당 대변인이 채우기도 했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3월 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비례정당 조국혁신당을 창당하며 선거판에는 다시 지각변동이 일었다. ‘정권 심판’을 구호로 충성도가 높은 친문과 호남의 지지를 빨아들인 조국혁신당은 창당 이래 야권 비례정당 선두를 줄곧 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에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이란 신조어도 등장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이 제1당이 돼야 한다’며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삐걱대며 휘청이던 민주당의 위기를 잡아준 것은 모순되게도 ‘용산’이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출국,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테러 발언’ 등이 논란으로 떠오르면서다. 특히 이 전 장관의 경우 채모 해병대 상병 순직 사고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던 중 대사 업무를 위해 호주로 출국했고, 야권은 이에 대한 집중 공세에 나섰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에 ‘이 대사 즉각 귀국’을 요청했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거부했고 ‘2차 윤-한 갈등’의 전운이 일기도 했다. 이후 윤 대통령의 이 대사 조기 귀국과 황 수석 사퇴 수용에도 악화한 분위기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대파 논란’ 역시 이번 총선에서 민심에 직격탄이 된 사안이다. 윤 대통령은 3월 18일 물가 상황 점검을 위해 서울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았고, 당시 매장에서는 대파를 한 단(1㎏)에 875원에 판매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했다. 이에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물가를 모른다는 취지의 비판이 이어졌고, 대통령실은 “하나로마트(양재점)가 대파를 875원으로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물가 안정 정책이 현장에서 순차적으로 반영됐고, 하나로마트 자체 할인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권의 ‘대파 공세’는 선거 직전까지 이어졌고, 이는 결국 고물가로 인해 고통받는 서민들의 표심 향방에 영향을 주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 같은 정권심판론을 외쳐온 민주당에 타격을 준 것은 후보자들의 막말과 부동산 논란이었다. 양문석 경기 안산갑 후보가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대학생 딸 명의로 11억원의 사업자 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편법 대출’ 의혹이 불거졌다. 김준혁 경기 수원정 후보는 ‘이화여대생 미군 성 상납’, ‘퇴계 이황 성관계 지존’ 발언 등 과거 막말이 드러나 선거 막바지까지 논란이 지속됐다. 하지만 이들은 각각 장성민 경기 안산갑 국민의힘 후보, 이수정 경기 수원정 국민의힘 후보를 꺾고 22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박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