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1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
대통령 선거가 겨우 닷새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런 긴박한 순간에 무려 세 군데나 되는 국제 규모 골프장을 지어주기 위해 북한 당국에 6천억 원을 제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에 현금을 동원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급보증을 받아낼 만한 상대도,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거성 자동차그룹에 기대볼 수밖에 없었는데, 거성의 재벌 2세는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정부 쪽에 공을 떠넘긴 채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으니… 특별보좌관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도 6천억 원이란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분은 거성 회장님밖엔 없습니다. 회장님 결심을 얻어주세요.”
“더 이상은 어렵습니다, 특보님. 이번 랠리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쏟아 부은 돈만 해도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 아니었습니까? 더 이상 무리하다간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자들과 잘 조율해 주십시오.”
“물론 거성그룹의 도움으로 랠리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고, 그 덕택에 선거를 닷새 앞둔 여론조사에서 63% 지지율을 얻어내긴 했지만… 아직은 불안해서 그렇지요. 8부 능선까지 올라왔으니 조금 만 더 거성에서 힘을 써준다면…”
“특보님, 저희도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습니까?”
돈이 없다는 데 더 이상 어쩌란 말인가? 사실 거성그룹으로서는 내년도 신 모델 출시를 위한 론칭 광고를 비롯하여 미주시장에서 악재로 불거진 리콜 처리, 선거에 임박한 주식시장의 침체 등으로 더 이상 자금을 회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곽승철과 공지호에게 골프장을 지어줄 수 없다고 통보하면, 보나마나 생떼를 부릴 텐데… 걱정입니다. 그들 배후에는 인민무력부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도사리고 있질 않습니까? 만약에 그들이 국경선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랠리팀을 막아버리면 어쩌지요?”
“선거에 걸림돌만 되지 않는다면 까짓 거 대수로운 일도 아니잖습니까? 중국에서 북한 쪽으로 국경선을 넘게 될 날이 선거 이틀 전 아닙니까? 이미 유권자들은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 결정한 뒤 아닐까요?”
“그러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SNS가 두려워서 그렇지요. 페이스북, 트위터, 심지어 카카오톡으로 순식간에 여론을 퍼 나르는 세상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대북정책이 허점투성이라는 둥, 북한에 질질 끌려 다닌다는 둥, 그렇게 이틀이나 떠들면 세상이 뒤집어지고도 남지요. 자칫하다간…”
“자칫하다간 그동안 공들여 온 랠리 대회가 오히려 해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씀? 우리가 파놓은 함정에 우리가 빠지는 셈인가요?”
“어허, 이거 큰일 났습니다. 북한의 노림수에 꼼짝을 못하게 생겼으니…”
거성의 재벌 2세와 특별보좌관은 넋 놓고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대선주자와 터놓고 의논할 겨를도 없었으므로 더욱 기막힐 뿐이었다. 대선주자는 마지막 일정으로 지방유세를 벌이는 중이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무려 다섯 군데의 중소도시를 돌기 위해 새벽부터 거동하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왕회장께 연락을 취해주세요. 8부 능선까지 올라와서 후퇴할 수는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현금은 내년 봄에 필요해질 테니 일단 책정부터라도…”
“저도 중간에 끼어서 난감할 따름입니다만, 정 그러시다면…”
재벌 2세는 거성의 왕회장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거성의 왕회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쩌면 왕회장은 선거가 끝나는 날까지 외국공장 순방 길에 올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거기간은 재벌에겐 골치 아픈 시기일 뿐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기간 동안 외국으로 떠나가서 편히 쉬다가, 장차 선거 결과에 따른 뒷일을 모색하는 편이 오히려 현명한 일인지도 몰랐다.
무려 세 번이나 핫라인을 연결해도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자 특별보좌관은 무거운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어쩐지 그의 뒷모습에 찬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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