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해야 하나? 누가 좋아하겠어요. 제가 ‘소원’을 선택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주제였어요.”
지난 10월 2일 개봉한 ‘소원’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하루 전 날 이준익 감독은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겉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이 작품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끊임없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소원’, 소재가 가진 장벽 높아
“이 영화는 논리로 설명하기보다 소재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 때문에 장벽이 높아요.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긴 한데, 흥행을 떠나 관객 분들이 주제에 대해 진심을 공감하셨으면 좋겠어요. 마냥 웃으라고 만든 영화는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소원’이 불편하고 답답한 ‘눈물’ 코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웃음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이 작품에서 관객들이 가지게 되는 웃음은 ‘다행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원’은 생각이 아닌 마음으로 찍었어요.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이 극장에서 웃음이 나왔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그 웃음이 불손하게 보이거나 오해를 살 수도 있잖아요. 우리 영화를 본 관객들의 웃음은 조마조마 했던 순간에 ‘하~’ 하고 웃는 ‘다행이다’는 의미죠. 감독은 내용의 가 치를 책임지잖아요.”
# 김지혜 작가의 진심, 온전하게 배달만 했다
‘소원’은 이준익 감독이 의뢰받아서 찍은 첫 번째 영화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아든 그는 소재가 주는 거부감 때문에 쉽게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시나리오 안에서 김지혜 작가의 진심을 봤다.
“시나리오 속에 김지혜 작가의 진심이 담겨 있었죠. 이 진심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연출을 할 때 자의식보다는 작가의 진심을 온전하게 배달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죽했으면 제가 감독이 아니라 ‘연출 기사’라고 했겠어요.”
‘소원’을 동화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주인공은 바로 코코몽 캐릭터다. 주인공 소원이는 코코몽 마니아이며, 이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기도 한다.
“김지혜 작가가 정말 훌륭하게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진심으로 표현하니까 찍는 데 의심이 없었죠. 세상의 모든 아빠와 딸 사이에는 동화가 있어야 해요. 돈이라는 현실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슬프잖아요. 일상이 깨어진 가족 중에서도 이런 끔찍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한테는 동화만이 좋은 대안이지 않을까요. 코코몽이라는 존재는 현실의 끔찍함을 환치시킬 수 있는 교감의 통로로서의 동화죠.”
김지혜 작가가 신경 썼듯이, 이준익 감독도 소원(이레 분)이와 코코몽의 대화 신에 온갖 공을 다 들였다. 이는 아빠와 딸 사이의 동화를 그리며 관객들로 하여금 ‘매직 타임’에 빠지게 만든다.
“물리적 피해는 치유가 가능하지만 영혼이 파괴되는 2차 피해는 치유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코코몽과의 대화 신을 정말 신경 써서 찍었죠. 아빠가 딸에게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고 그정도까지 최선을 다하는 장면을 ‘매직 타임’이라 이름 지었어요. 참혹한 현실을 관객들이 다행으로 생각하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였죠. 조명도 예쁘게 찍어서 관객들이 혹하게 만들었어요. 미장센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 연기 디렉션? 거의 없어!
여타의 작품들이 연속적인 사건을 다뤘다면 ‘소원’은 하나의 사건 뒤에 시나리오만이 존재한다. 이미 상황이 선명하고 분명하기에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반응했다. 이준익 감독은 ‘소원’이라는 커다란 ‘신의 놀이터’에 배우들을 데려다 놨다.
“야구로 비유했을 때 전 스트라이크 존이 넓은 감독이에요. 대충 들어오면 다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죠. 만약 신의 놀이터가 있다면 배우들이 어떤 놀이기구를 타던 다 오케이에요. 다만 놀이터 담장 밖을 나가려고 하면 살짝 알려면 주는 거죠.”
‘방목형 감독’ 이준익은 그러한 틀 안에서 작품에 진심으로 참여한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설경구 같은 경우에는 현장에 짐승이 돼서 와요. 심지어는 감정이 날아 갈까봐 눈도 못 마주치고 말도 더듬어요. 눈물을 꼭 참고 있기 때문에 컷 사인이 떨어지면 그냥 막 쏟아져요. 머리끝까지 찬 눈물이 쏟아지는 데 어떻게 테이크를 많이 갑니까. 엄지원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우리 아이와 똑같은 상황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순간 소름이 쫙 돋았어요.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렸죠. 소원이 역의 이레한테는 배운 게 많아요. 정말 ‘인간은 날 때부터 천재지만, 교육을 시키면서 깎아 먹는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니까요. 영석이 역의 도협이는 촬영 셋팅을 끝내놓고 그 앞에 세워놓으면 사람이 달라지는 ‘슛 배우’에요. 처음에는 어휴...”
감독도 배우도 불손하지 않게 진심을 다했다. 그만큼 소재가 가진 무게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단순하게 끔찍한 사건을 알리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는데 그치지 않고 ‘치유’와 일상으로의 ‘복귀’를 담았다.
“카타르시스는 페이소스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통해서 자기정화가 되는 거죠. 페이소스를 소재로 카타르시스로 향하는 것이 이 영화를 찍은 이유에요. 일반적으로 고통에 대한 트라우마를 느끼고 피하려고만 하잖아요. 그게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거죠.”
소원이의 가족이 바라는 것은 바로 ‘평범한 가족처럼 사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주어졌던 것을 잃어버린 한 가족, 그 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머리끝 까지 차오른 눈물을 꾹꾹 눌러야 했던 사연은 영화 ‘소원’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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