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지난 26일 클럽이 즐비한 홍대 인근 거리에는 난데없이 드라큘라, 영화 ‘스크림’에 나오는 괴한 등의 복장을 한 이들이 출몰했다. 클럽에서 연 할로윈데이 파티를 즐기려는 인파들이었다.
이 같은 장면은 오는 31일 이태원 등에서도 다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태원 등 외국인들이 많은 곳은 벌써 ‘할로윈 파티 명소’라며 젊은 이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할로윈데이는 본래 성직자들이 죽은 이의 모습을 하고 악귀를 쫓는다는 켈트족 신앙에서 시작한 미국의 행사다. 미국에서는 이날 귀신분장을 한 채 파티를 하거나 아이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며 사탕을 얻어가는 등의 풍습이 있다.
국내에는 이태원이나 영어유치원 등 외국 문화를 접하는 일부 지역에서만 치러졌던 할로윈데이 행사가 최근 널리 확산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한국 고유의 명절은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족보에도 없는 외국 명절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사대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호텔가는 오는 31일 일제히 할로윈 행사를 진행한다. 호텔에서 여는 할로윈데이 파티는 보통 5만원 상당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일부 호텔은 30만원 상당의 메뉴를 주문하는 고객에게는 할로윈데이 파티 입장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아예 ‘할로윈데이 패키지’ 상품을 기획한 곳도 있다. 1박 숙박과 할로윈파티 입장 티켓, 라운지나 수영장 이용권 등을 묶은 할로윈 패키지의 가격은 보통 30만원을 넘어선다.
호텔은 외국인들과의 접점이 많은 곳이라 이해한다 해도, 동네 어린이집까지 들여다보면 ‘할로윈 열풍’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몇 년 전만 해도 영어유치원에서나 했던 할로윈데이 행사를 최근에는 대부분의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이 하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보통 각 가정에 할로윈 파티에 맞게 아이들을 꾸며 보내고, 간식을 마련해달라고 통보한다.
아이들이 할로윈데이에 입을 의상 값만 해도 간단한 수준이 아니다. 이화여대 근처 파티용품 매장에서 판매하는 공주 의상은 한 벌에 4만원. 간단히 마녀모자(6000원)와 망토(1만7500원)만 걸치고 간식을 얻을 호박통(3000원)을 들게 한다고 해도 2만~3만원은 잡아야 한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는 자칫 준비를 소홀히 하면 아이가 주눅이 들까봐 어쩔 수 없이 과한 준비를 하게 된다고 전했다.
주부 이모(35ㆍ여)씨는 “그냥 모자, 망토 정도만 하면 허술해보인다고 하더라”면서 “남자 아이들은 스파이더맨 같은 전신 의상을, 여자 아이들은 공주드레스를 좋아한다는데 이런 의상들은 못해도 7만~8만원은 간다”고 전했다.
간식을 준비해 들려보내는 것도 엄마들에게는 일이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백화점 쿠키 매장에서 1만1000원 상당의 쿠키 1통을 고른 한 고객은 “이웃집 엄마는 이틀 전부터 아침마다 해골모양 쿠키를 굽는다고 난리던데, 난 직접 만들 시간이 없어서 그냥 사서 들려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할로윈데이가 엄마들의 고충을 늘리는 ‘신(新) 등골브레이커’가 되고 있다는 성토가 빗발치고 있다. 지난해까지 호주에 거주하다 귀국한 진모(38ㆍ여)씨는 “호주에서도 할로윈데이는 미국 행사라고 잘 챙기지 않았는데, 서구문화권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할로윈데이를 챙긴다는게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양모(35)씨는 “단오 같은 우리 고유의 명절을 챙긴다면 모를까, 우리가 왜 할로윈데이까지 챙겨야 하느냐”고 질타했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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