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 감추어진 승부 (44)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스러운 것인가. 해발 3,000미터 고산지대에서는 누구나 30~40미터씩은 멀리 내보낼 수 있을 것이란 말에 강준호는 뻥!뻥! 공을 날리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온 몸에 힘이 들어갔음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처음엔… 공을 제대로 맞추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공은 OB지역으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런 염병!”
어려서부터 ‘고운 말을 씁시다.’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막상 OB를 내고나면 저마다 육두문자 한 마디씩 내뱉는 걸 예사로 알게 마련이다. 강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는 HY 훌푸드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300야드 장타를 날리고 싶었으므로 오히려 그 증세가 더 심했을 것이다.
“@#$%^&*@#$%^&!”
그럴 때마다 캐디가 한 마디씩 거들곤 했다. 아마도 ‘화내지 마세요. 그럼 더 숨이 차게 됩니다.’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300야드 장타를 날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는?
“얼씨구? 염병 떠네!”
이런 식으로 전반 나인 홀이 지나고, 후반 나인 홀로 들어서니 해발이 점점 높아져 숨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강준호와 3류 감독, HY 훌푸드 직원들은 온몸에 열려있다는 9혈에서 저마다 물기가 스며져 나오는듯한 기분에 절어있었다.
“팀장님, 콧물이 자꾸… 흘러서 샷을 하기 어렵네요.”
콧구멍도 9혈 중의 하나이니 콧물이 흐르는 모양이었다. 그런가 하면 강준호는,
“난 어째 아까부터 항문 주위가 찝찝해.”
물론 항문도 9혈 중의 하나겠지. 저마다 이런 지경이었으니 점수가 좋을 턱이 있나. 후반 나인 홀에 들어서면서부터 오히려 장타는커녕 샷을 하는 족족 거리가 짧아지기 시작할 따름이었다. 그럴 때마다 캐디는 빨리 걷지도 말고 떠들지도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심지어 퍼트를 하기 전 라인을 살피기 위해 주저앉지도 말라는 눈치였다.
“이런 염병… 어이 캐디, 산소통!”
꿈에도 그리던 15번째 홀, 해발 3,200미터 티잉그라운드에서 또 다시 OB를 날린 강준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의 목소리는 아련히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염,염,염,염… 병,병,병,병… 산소 통,통,통,통…
옥룡설산 골프장은 명성이 자자한 설계사 ‘닐 하워드’의 회심작이라 할 수 있다. 골프코스를 만들되 원시적인 풍치를 전혀 해치지 않고 설계한 것이 여러 골퍼들의 입에 회자된다. 장엄하면서도 오밀조밀 세심하게 숨겨진 벙커는 나뭇잎처럼 그린을 감싸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페어웨이가 남도 길처럼 굽어지고, 그 옆에 수직으로 솟은 등성이마다 구름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칫 고산증세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소변을 지리기도 할 정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코어 카드를 슬쩍 훔쳐보던 강준호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야 말았다. 1,3,2,3,2,2,3… 후반 들어 15홀까지의 성적이었다. 트리플보기가 무려 세 번, 더블보기가 역시 세 번, 그나마 가장 잘 친 것이 보기였으니 ‘염병’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산소가 희박해서 그런가 봐요. 몸이 말을 듣지 않죠?”
눈치 빠른 3류 감독이 은근한 눈빛으로 강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강준호는 어흠, 어흠! 잔기침만 내뱉을 뿐이었는데.
“19홀에서도 이렇게 풀을 쑤면 큰일인데…”
혼잣말인 듯, 혹은 강준호에게 들으라는 말인 듯 중얼대는 3류 감독의 모습이 측은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산소통을 코에 박고, 온몸에 뚫린 9혈에서 정체 모를 즙을 쏟아내면서도 나시족 아가씨를 향한 일념에는 변함이 없는 모습이라니!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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