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3회> 감추어진 승부 47
“이런 산비탈에 사는 여자들이…흐흐흐, 좋다면서요?”
“좋아요? 뭐가?”
“다 아시면서…. 허구한 날 산비탈에 쪼그리고 앉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밭을 매노라면 아랫도리에 근육이 단단하게 올라붙는단 말씀이지요. 흐흐흐….”
어쨌거나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3류 감독은 약간 주눅이 든듯이, 그러나 희망찬 말투로 이렇게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정말입니까? 하긴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어둠에 깃든 동파만신원의 신로는 하염없이 길었다. 나쁜 신을 형상화한 부목과 좋은 신을 형상화한 부목이 열 지어 서있는 음산한 길을…오로지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일념 하에 그들은 걷고 또 걸었다.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도 벽화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는데, 아하! 이건 또 뭐야? 드디어 나시족 아가씨들 앞에 당도했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벽화 그림은 커다란 가위로 남근을 자르는…이를테면 거세를 하는 상황을 담아낸 벽화가 아닌가.
“헬로, 나이스 투 밋츄!”
원래 나시족은 중국 내에서도 조선족 다음으로 교육열이 높다고 했던가? 제법 버터맛 나는 발음으로 나시족 아가씨가 인사를 건네왔다.
“아니 얘들이 어째서 이런 그림 앞에 서있는 거죠? 등골이 오싹해지네.”
“그렇지요? 팀장님. 난 식은땀이 흐르는데요?”
그러거나 말거나…나시족 아가씨들은 마치 10년 만에 친오라버니라도 만난 것처럼 다짜고짜 그들의 목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아! 헬로우? 아이 러브 유!”
다짜고짜 아이 러브 유라니! 한량이라면…어떤 상황이 벌어지건 상열지사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한량의 상열지사는 그게 문제다. 일단 여자를 품었으면 설혹 상대가 귀신이라 할지라도 끝장을 봐야만 한다. 홀려서 일을 치르든, 나중에 치도곤을 맞든, 벽화처럼 거세를 당하든 상열지사를 도중에 그만둘 수 없다.
자칭 한량인 3류 감독은 되지도 않는 영어를 지껄이며 나시족 아가씨의 가느다란 허리를 부여잡았다. 3류 감독이 작업을 시작했으니 강준호도 멀뚱멀뚱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준호도 또 다른 나시족 아가씨의 손목을 잡아끌어 인근 바윗돌 뒤로 스며들었다. 나중에 삼수갑산엘 갈망정….
어째서 동파만신원의 신로에 거세를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인지, 또한 어째서 나시족 아가씨들이 하고 많은 그림을 놔두고 그 벽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생각할수록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올랐지만, 에라 우리가 누구냐? 대한민국의 귀신 잡는 해병 출신 아니더냐. 그저 마음을 이렇게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강준호와 3류 감독이 여자를 품기 위해 스며든 곳은 똑같은 형태로 생겨먹은 바윗돌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바윗돌이 아니라 동파교를 믿는 나시족이 달걀처럼 동그랗게 깎아 세워놓은 일종의 토템 부조였을 것이다.
사람이 알에서 태어났음을 믿는 그들은 커다란 두 개의 바위를 계란처럼 깎아놓았는데…. 검은 알은 나쁜 신을 상징하고, 흰색 알은 좋은 신을 상징하는 토템이라고나 할까. 그런 내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준호가 스며든 곳은 흰색 알 뒤편이었고, 3류 감독이 몸을 숨긴 곳은 검은색 알 뒤편 으슥한 곳이었다. 오늘따라 하늘엔 달도 없고 음산한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웬걸 동파만신원 주위에는 흐느적흐느적 안개까지 피어나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러면 어떠랴. 날이 어두우니 바위가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구분도 어려웠다. 하긴 바위인지 토템 부조인지도 모르는 판국이었으니 그들은 허겁지겁 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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