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업계 토네이도…삼성‘Q9000’개발팀에 히트비결 묻다
바람=직진 고정관념에 도전장 역발상 회오리 바람으로 새바람
잠자리 날갯짓·날치 비행 관찰 생체모방기술 쉼없는 접목 선행개발팀은 미래 만드는 주역 이미 2015년 제품 개발도 착수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은 삼성전자의 ‘주종목’은 아니었다. 에어컨만 수십 년간 해 온 글로벌 전문기업들에다 LG전자같이 강력한 국내 기업들까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TV나 반도체, 스마트폰처럼 “우리가 최고”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상황은 안 됐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연초 공개한 스마트 에어컨 ‘Q9000’이 시장에서 큰 인기다. 200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에도 전년 대비 2배 이상 팔리며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좀 이른감도 없진 않지만, 삼성전자에선 자신 있게 “우리가 이제는 1위다”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삼성전자 내 다른 사업부 사람들조차 “에어컨 쪽에서 좋은 작품 하나 내놨다”고 한다. 세상에 나온 지 반 년도 안 된 제품치고는 대성공인 셈이다.
▶‘바람의 질’에 건 승부수=‘Q9000’의 성공은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다. 2011년부터 2년 뒤를 내다보고 Q9000을 가지고 씨름을 해 온 사람들의 노력이 담겼다. 삼성전자 ‘에어컨 선행개발팀’이다. 팀을 이끌고 있는 김중호 수석은 Q9000의 최대 강점을 묻는 질문에 다소 의외의 답을 내놨다. 강력한 냉방력이나 감각적인 디자인, 이제는 삼성의 DNA가 되어버린 스마트 기술 등을 제쳐두고 그가 먼저 꼽은 것은 ‘바람의 질’이다.
“기존의 크로스 팬이나 터보 팬이 만들어 내는 바람은 직진성이 강했습니다. 사용자들이 바람을 직접 맞아야 됐지요. 바람의 방향에 있는 사람은 춥고, 그 외의 사람은 더운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Q9000에 적용된 회오리 팬(사류 팬)은 경사지게 바람이 회오리모양으로 날아갑니다. 훨씬 더 쾌적한 바람이 만들어집니다. 찬 공기를 방안에 있던 더운 공기와 섞는 데도 시간이 크게 단축 됩니다.”
Q9000에는 3개의 독립된 회오리 팬이 적용됐다. 항공기 제트엔진의 기류제어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기존의 에어컨들이 날개 하나에서 만들어내는 찬 공기를 상하좌우로 방향만 달리해 보내는 방식이었다면, Q9000은 3개의 사류팬이 만드는 회오리 형태의 바람을 강도를 조절하고 섞어가면서 공간 전체에 보낸다. 훨씬 부드럽고 균일한 바람이 만들어진다.
회오리 팬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회오리 팬을 에어컨에 넣겠다는 생각조차 아무도 하지 못했다. 에어컨 바람은 무조건 직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강했기 때문이다.
“제1한강교를 가 보시면 다리가 2개 있습니다. 같은 모양이지만 일제시대 지은 것과 그 후에 지은 것과 교량에 달린 볼트의 숫자나 디자인이 다릅니다. 고정관념을 깬 거죠. 회오리 팬을 만드는 데도 고정관념을 깨는 게 힘들었습니다.”
회오리 팬의 날개를 만드는 데만 수백 시간이 걸렸다. 날개 끝 부분의 디자인과 각도를 달리해 가면서 목업(Mock Up: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드는 것) 테스트만 수십 차례 반복했고, 원하는 구조의 바람을 만들어내고 제어하기 위해 각종 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뮬레이션도 셀 수 없을 만큼 벌였다.
Q9000을 가장 날씬한 에어컨으로 만들기 위한 일도 쉽지 않았다. 에어컨 사이즈를 줄이면서도 성능을 키워야 하니 각 분야별 팀원들 간 다툼도 많았다. “25년간 에어컨 개발하면서 가장 많이 싸운 제품일 겁니다. 많이 싸우면서 최적화에 도달하다 보니 완제품은 물론 부분별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예컨데 Q9000에는 공기청정을 담당하는 부분의 두께가 22㎜입니다. 다른 회사 제품의 절반 수준 두께지요.”
▶잠자리 날갯짓도 유심히…“우리는 미래를 만들어요”=김 수석을 비롯한 60여명의 에어컨 선행개발팀은 이름 그대로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김 수석은 2015년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팀이 최근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생체모방기술’이다. 동물과 식물들이 어떻게 바람을 만들어내는지다.
“잠자리를 잡아 날갯짓을 연구하기도 합니다. 쉬는 날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날치가 바다 위를 도약할 때 어떻게 날개를 움직이는지, 독수리가 하강할 때 깃털의 끝 부분이 어떻게 변하는지만 보는 팀원들도 많습니다.”(웃음)
사실 에어컨은 단순해 보이지만, 가전제품 중에 가장 복잡한 물건이다. 기류, 온도, 습도 등은 물론 제균, 공기청정, 사용자의 습관, 제품 디자인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 유독 많다. 그러다 보니 선행개발팀원들의 전공도 기계공학, 섬유공학, 물리학, 기상학 등은 물론 축산, 화학, 섬유공학까지 다양하다. 에어컨이 만들어내는 바람과 온도가 사용자의 피부는 물론 의류와 먹거리에까지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삼성의 ‘에어컨 박사’는 사람들이 에어컨을 ‘더위를 식히려고 쓰는 계절형 가전제품’으로만 받아들이는 게 반갑지 않다.
“양계장에 가 보시면 사람보다 큰 팬으로 바람을 만듭니다. 시원하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기류를 만들기 위한 것이죠. 그래야 산란계들이 오래 건강하게 삽니다. 과일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나 균을 키우고 관리해야하는 버섯농장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온도, 습도, 제균도 중요하지만 공기의 흐름을 적절하게 만드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집에서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을 총 5대 씁니다. 에어컨은 건강을 위한 필수품입니다.”
홍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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