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환율전쟁…보이지않는 공방전
한국·프랑스 수출 등 심각한 타격 중남미 칠레·페루 등에도 공포 확산 FT “보호무역주의 장벽 우려 다시 고개” 중국 “통화가치 절하는 독배 마시는 격”
환율 조작으로 자국의 대외경쟁력을 높이려는 환율전쟁은 ‘은밀한 보호주의’로 불린다. 우선 내 나라 이익부터 챙기고 보자는 점에서 ‘화폐 민족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환율전쟁이 잠시 진정 기미를 보이는 듯하더니 미국과 유럽이 ‘양적 완화(QE)’를 지속하는 가운데 일본이 필사적으로 뛰어들면서 포연이 자욱하다. 게다가 미국이 일본의 엔화 약세를 지지하고, 수출 주도형의 신흥국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환율전쟁은 ‘선진국 대 신흥국’ 구도로 가닥이 잡혀가는 양상이다.
각자도생을 위해 시작된 환율전쟁이 결국은 세계 경제를 승자 없는 공멸로 몰고 갈 것이라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미ㆍ일, 환율전쟁 불씨=최근 모습을 드러낸 3차 환율전쟁은 금융위기 이후 침체의 늪에 빠진 미국과 일본의 공격적인 양적 완화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미국은 거대 금융회사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면서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이어 부동산이 초토화되고 제조업이 붕괴됐으며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대폭 낮추는 것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그러자 내놓은 것이 QE다. Fed는 2008년 말~2011년 상반기네 2조3000억달러를 찍었고, 이도 모자라 지난해 9월 3차 QE에 나섰다. 게다가 미국은 실업 문제가 충분히 개선될 때까지 추가적 QE를 이어가겠다고 하고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다크호스가 나타났다. 바로 일본이다. 지난해 12월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2~3% 오를 때까지 돈을 찍어내겠다며 무차별적인 엔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본은 장기 침체와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정책이라며 이해를 강요했다. 엔저 현상으로 인한 주변국 피해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국의 경기 부양 과정에서 파급되는 부작용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QE를 시행 중인 미국은 “일본의 디플레이션 타개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공개적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유로화와 아시아권의 통화 절상으로 일본 엔화 약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수 있어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글로벌 환율전쟁이 최대 이슈로 부상하면서 기대를 모았던 지난달 G20 회의는 실효성 있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서 실망만 안겼다. 오히려 엔저 면죄부 역할을 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신흥국 거센 반발=이미 엔저 피해를 보고 있는 한국과 프랑스 및 중남미 신흥국들은 환율전쟁에 깊은 우려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13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환율전쟁의 공포가 중남미로 번져 칠레 페루 콜롬비아 등 각국에서 통화 가치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보호무역주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의 이강(易綱) 부행장 겸 국가외환관리국장은 “선진국들의 (경쟁적인) 양적 완화 정책으로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러시아도 일본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러시아 중앙은행 수석 부총재는 “우리는 지금 새로운 ‘환율전쟁’의 문턱에 서 있다”며 “일본을 다른 나라도 따라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특히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의 가오시칭(高西慶) 사장이 일본 정부가 주변국을 “쓰레기통 취급한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로부터 일본의 환율 정책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웃 나라를 쓰레기통 취급하고 환율전쟁을 촉발하는 행동은 다른 국가에 위험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일본 자국에도 해롭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중국은 환율전쟁에는 참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런민은행 전 부총재인 우샤오링(吳曉靈) 런민은행대학원 원장은 13일 “통화 가치 절하는 독배를 마시는 것과 다름없다”며 환율전쟁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는 여전히 중국의 통화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이 환율전쟁에 반대하는 이유는 수출 타격보다는 물가다. 환율전쟁으로 인해 핫머니가 유입되면 겨우 잡았던 물가가 다시 상승할 수 있어서다. 지난 5일 런민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1월 외화 유입 규모가 6840억위안(약 120조원)에 달했다.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였다. 물가 상승은 중국 새 정부가 시동을 걸려는 경기 부양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데에 중국의 고민이 있다.
한희라 기자/
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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