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ㆍ김진원 기자] 새벽 네 시, 이른 시간이지만 상인들은 성인 키만큼 높이 쌓인 상자 사이를 오가며 응찰기와 전광판 만을 응시한다.
낙찰된 상자는 운반직원들 손에 리어카, 오토바이, 지게차, 전동차 등에 옮겨지지만 어떤 과일이 누구에게 낙찰됐는지는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들만의 질서에 따를 뿐이다.
“아 뭐하자는 거야. 제대로 해라” 경매가 절정에 달하면서 약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직원이 경매 품번과 상품을 틀리기에 잡아놓자 경매사가 부르는 품목을 따라 바쁘게 전자응찰기를 누르던 30여 명의 상인들은 격앙됐다. 곳곳에서 상자를 뒤집어까는 등 고성도 오갔다.
지난 주말 새벽 헤럴드경제가 찾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가락시장은 새로운 가격제도 도입을 앞두고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견고한 그들만의 질서는 여전했지만, 영세 농민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모습이었다.
시장도매인제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에 따라 오는 6월 가락시장에 도입된다.
공영도매시장의 개설자로부터 지정받은 시장도매인이 농수산물을 농민으로부터 매수하고 소비자나 소매상으로 바로 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경매와 같은 유통단계를 축소시켜 중간마진을 줄이고, 농수산물의 배송 시간을 단축시키는 게 장점이지만 시장도매인을 상대로 협상력을 갖추기 힘든 영세농민의 경우 제대로 된 흥정을 하기 어려워 상인과 농민들 사이에 엇갈린 반응이 나오는 상황이다.
영세농민들은 ‘협상력 부족’을 이유로 경매제 유지를 원하는 눈치였다.
서울 강동구에서 쌈채소 고수를 재배하는 임창숙(61) 씨는 “지금도 밭에서 장사꾼들이 떼어간 대금 200만 원을 일년 가까이 못받고 있다”며 “지금도 이런데 시장도매인제가 시작되면 도매인에게 돈을 못 받아도 계속 물건은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이 날 경매를 담당한 한 경매사는 “가격결정을 하는데 시장도매인이 제대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시장도매인제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규모가 큰 대상들이 아닌 이상 내가 접촉한 대부분의 농민들은 반대한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달 23일 농민 5만500여 명은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회, 서울시를 상대로 ‘농민 출하자 시장도매인 반대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이들은 ‘출하자ㆍ유통종사자 합의’ ‘대금정산조직 설립’ ‘시장도매인제 세부 도입 방안 마련’ 등 세 가지 조건이 6월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시장도매인제를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상인 측은 이러한 농민들의 우려를 ‘한낱 기우’라고 일축하고 있다.
정석록 전국과실중도매인조합연합회 서울지회장은 “현재 경매제도에서는 도매법인에 필요하지 않은 수수료를 내고 있어, 가격이 비싼만큼 물류나 유통효율화를 위해 시장도매인제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정 지회장은 “현재 정부가 시장도매인제를 유독 밀어붙이기는 하는데, 차라리 한동안 경매와 시장도매인을 병행하도록 한다면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며 “상인, 농민들이 규모와 품목에 상관없이 시장도매인과 경매 모두에 참여해 투명하게 경쟁 할 수 있도록 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유통효율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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