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가 송미숙 교수가 말하는 한국의 추상화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참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추상화를 접했던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감상평이다. 뭔가 좋지만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림이 바로 추상화다.
갤러리현대(종로구 사간동ㆍ대표 조정열)가 ‘한국의 추상회화(Korean abstract painting)’라는 타이틀의 전시를 열었다. 현 박명자 회장이 20대 나이였던 1970년 ‘현대화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업화랑을 연 지 45년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한 기획전시다. 한국 근ㆍ현대 추상화가 18인의 작품 60여점을 전시장에 모았다. 이응노, 남관, 김환기, 한묵, 유영국, 이성자, 곽인식, 류경채, 권영우, 정창섭, 윤형근, 김창열, 서세옥,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김기린. 작가 18인중 10명이 작고했다. 전시는 1936년생 이우환, 김기린을 기준으로 이전 세대 작가들의 작품들로 추렸다. “현대화랑만이 할 수 있는 전시”라는 자평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한국 근ㆍ현대 추상회화의 역사가 한자리에 소환됐다.
아무리 의미있는 전시도, 일반인에겐 여전히 어렵다. 게다가 ‘단색화’라는 이름의 1970년대 한국의 추상화 사조가 국내ㆍ외에서 재조명받는 이 시기, 단색화와 일본의 모노하(物派), 미국의 미니멀리즘 등 닮은 듯 다른 미술사조가 뒤섞여 거론되면서 난해한 그림을 더욱 난해하게 만든다.
전시 평론을 쓴 미술사가 송미숙 전 성신여대 교수의 말을 통해 한국의 추상화를 쉽게 풀어봤다. 송 전 교수는 1991년 서양미술사학회를 창립하고 2대 회장을 지냈으며, 1999년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다. 1995년부터 삼성미술관 관장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추상화의 시작=추상화는 사물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화면은 2차원인데, 입체감 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환영(Illusion)을 담는 것이다. 게다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묘사할 수는 없다. 결국 주관적이고 추상적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것을 심화시킨 것이 추상화다. 간결한 색과 형태로 표현하는 것. 회화다운 회화, 회화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회화가 추상화다.
한국의 추상화는 1910년 일제시대 때 도입됐다.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인 교수들이 한국에서 양화를 가르친데서 시작됐고, 최초의 양화가로는 고희동(1886-1965)을 꼽는다. 집에 돈푼께나 있다는 사람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그림을 배웠는데,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등이 추상 1세대에 속한다.
1930년대 일본에서 전위파 그룹전이 열렸고 여기에 김환기와 유영국이 참여했다. 원근감이나 깊이감 없이 평면적인 화면에 투명한 색채로 그린 이들의 추상화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면서 한국 추상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색화? 모노하?=1980년대 초 한국의 화단은 둘로 갈렸다. 한쪽은 단색화미술, 한쪽은 민중미술. 현실과 발언이 화두였던 민중미술의 공격 대상은 당연히 단색화였다. 단색화미술 쪽 박서보가 선봉장 역할을 했던 ‘에꼴드서울(정기 그룹전)’을 가리켜 ‘박서보 사단’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일본 모노하의 이론과 실천을 정립한 이가 이우환이다. 일본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이우환을 한국 출신 일본(Korean born Japanese) 작가’라고 생각할 정도다. 미국인들이 백남준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모노하는 단색화와는 조금 다르다. 물(物)이라는 한자를 쓰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모노하는 사물의 물질적인 성질을 강조한 것이다. 유리, 철사, 네온 등 회화의 소재가 아닌 잡다한 사물을 끌어들인 것이 모노하다.
그런데 단색화는 몸을 쓴다. 노동집약적(Labor intensive)이다. 나와 캔버스가 완전히 하나가 되도록 몰입한다. 선 그리기 등 특정 단위를 반복한다. 이우환 화백이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세로 선을 내려 긋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다. 이젤을 세워놓고 서서 그리는 김환기의 점화법은 이런 이유에서 단색화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미술을 특정 경향으로 묶는 것 자체가 작가들에게는 ‘불공평(Unfair)’한 일이다. 의미없는 일이기도 하다.
▶단색화가 잘 팔리는 이유=해외에서 단색화가 잘 팔리는 이유는 그들이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서양화는 ‘아류’라고 느끼는 반면 단색화는 뭔가 독창적이고 한국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단색화가 엘리트층 미술 애호가들의 취향에 부합된다는 이유도 있다. 그들이 단색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잘 팔리는 것이다. 여기에 ‘대중심리’도 함께 작용한다. “어느 부잣집 사모님이 샀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들리면 나도 사야겠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에르메스를 갖고 싶다”는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결국 대중의 취향을 움직이는 것은 소수 엘리트층의 취향이다.
▶현대화랑, 추상화 전시의 의의=현대화랑은 주로 평면(회화)을 많이 다뤄왔다. 한국 추상화 대가들 대부분이 이곳을 거쳤다. 이 작가들의 작품을 끌어낼 수 있는 것도 현대화랑이기에 가능했다. 컬렉터들이 갖고 있는 김환기 작품 90%를 현대화랑이 취급했으니까. 누가 어떤 그림을 갖고 있는지 박 회장이 큐레이터들보다도 더 잘 안다. 이중섭, 박수근 전시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그 이상의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이 화랑이다. 현대화랑의 역사가 곧 한국 근ㆍ현대 미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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