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유통업계 신화’를 일궈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적자생존’ , ‘아마봇’(아마존+로봇) 등 아마존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빗댄 단어들과 함께 일주일에 85시간씩 일하는 현실 등이 여론의 입방아에 올랐고 지나친 성과위주의 기업문화가 비판 대상이 됐죠.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보도에 베조스 CEO는 17일(현지시간) 회사 내부 메일을 통해 “NYT가 묘사한 회사는 내가 아는 아마존이 아니다”라며 “이런 기업은 극심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업계에서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아마존 측은 일부 직원들의 사례나 주장으로 회사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진정한 저널리즘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데요.
사실 아마존의 기업문화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베조스가 처음 고용한 직원이었던 셸 카플란은 지난 2012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회사 분위기에 대해 “매우 야만적인 ‘다위니즘’(적자생존)의 환경”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는 1999년 아마존에서 퇴사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은 NYT가 언급한 전직 인사담당자였던 로빈 안드룰레비치의 ‘목적의식이 강한 적자생존’이란 표현과도 같습니다. 보는 눈은 같은가 봅니다.
아마존에서 유통공급망 담당 부서장을 지낸 나디아 슈라부라는 지난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매우 간단하다. 당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찾으면 된다”며 “그런 뒤에 6~8명의 ‘아마조니언’(아마존 직원)들을 모아놓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명석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똑똑한 부하들을 고용하면 자신도 똑똑하게 보이기 때문에 관리자에겐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상사의 성과를 위해 부하 직원들은 경쟁상황에 놓이는 것이죠.
CNN머니는 아마존의 ‘등급을 매겨 내쫓는’(rank and yank) 시스템을 문제시 삼기도 했는데요.
과거 이 시스템은 제너럴일렉트릭(GE),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여러 대기업에서 채택했다가 포기한 인력관리 시스템입니다. 그럼에도 포천 500대 기업과 글로벌 중소기업들 가운데 21%가 여전히 이런 성과위주의 ‘등급 매겨 내쫓기’ 인력관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직원들. 이는 필연적으로 근로시간의 증가를 가져옵니다. NYT는 기사에서 일주일에 85시간을 일하고 휴가는 쓰지 못하는 사례와, 휴가 기간에도 커피숍에서 하루종일 일만 하다 일터로 복귀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기업문화를 단순 근로시간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한국인들의 근로시간은 세계최고 수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근면한 민족’이라는 자랑스런 수식어 뒤에는 ‘자기만의 시간’에 대한 갈증도 있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회원국 노동시간을 집계한 자료(2013년 이후)에 의하면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이 2163시간(2013년)으로 회원국 중 2위였습니다. 1위인 멕시코는 2237시간이었죠. OECD 평균이 1770시간임을 감안하면 평균보다 22% 더 많이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마존은 월마트를 제치고 유통업계의 거물이 됐고, 한국도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아마존을 두고 ‘리더십 원칙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글래스도어가 각 기업들의 전 현직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추천할 만한 직장’ 설문조사에서 아마존은 구글(92%), 애플(82%), MS(81%)에 비해 62%란 현저히 낮은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한국도 두 자릿수의 고도성장은 십여년 전 이야기가 되었죠.
현대인은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삽니다. 남들보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다니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주변인들과 경쟁합니다. 경쟁은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경쟁에 지쳐있다면 성장이 가능할까요.
12라운드에 접어든 권투선수들의 펀치는 1라운드때보다 위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결국엔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죠. 지쳐있는 선수 앞에 기력을 회복할 새도 없이 또다른 도전자가 나오고 승리의 영광은 어느새 패배의 쓴맛으로 다가와 링에서 내려옵니다. 일부 아마존 직원들에겐 일터는 경기가 끝날 줄 모르는 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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