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차이나머니’로 덩치를 키운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양면적이다. ‘하청산업으로의 전락’이라는 우려, ‘제작활성화’라는 기대가 공존한다.
공공미디어연구소 관계자는 “중국 거대 자본의 한국 방송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광고매출의 하락과 경기침체 등으로 제작비 조달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활력을 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그로 인한 인력 유출과 방송 콘텐츠 경쟁력 약화, 외국계 점유율 증가로 인한 문화주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중국 시장 진출 단계부터 우려는 한결 같았다. 국내의 고급인력과 노하우 유출 문제다. 여기에 중국 자본이 업계 깊숙히 파고드는 상황에서 ‘제2의 대만’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판관 포청천’, ‘꽃보다 남자’ 등 인기 드라마 콘텐츠로 아시아 시장을 이끌었던 대만은 중국의 대규모 자본이 들어오며 잠식당했다. 제작 노하우를 갖춘 감독, PD, 작가 등 고급인력들이 중국으로 건너갔고, 스타들도 중국 활동에만 매달렸다. 중국 자본은 대만의 탄탄한 제작사를 빠르게 흡수했다. 대만이 아닌 중국 현지 입맛에만 맞춘 콘텐츠가 쏟아졌고, 내수시장에서의 성과가 줄고, 배울게 없어지자 중국 자본 역시 함께 철수됐다.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대만은 지금의 한국처럼 컬쳐테크놀로지가 중국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자본의 힘으로 몇 십년간 방송 포맷, 아티스트들의 노하우가 흡수당한 이후 추락 일로에 놓였다”며 “연예기획사나 제작사가 중국자본을 받아들일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미 업계에선 ‘차이나 머니’ 침공 이후를 고민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짧게는 1~2년, 길어도 3~5년 사이에 중국발 창구가 막힐 것”이라고 관측한다. 중국 내 부동산 버블이 지나고 넘쳐나는 돈이 엔터시장에 집중됐던 상황에서 한국의 엔터시장까지 ‘차이나 머니’가 앞다퉈 들어오고 있으나, 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국자본의 투자를 받은 엔터테인먼트사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으나 업계에선 빠르면 1~2년, 길어봐야 3~5년 사이에 줄국발 창구가 막힐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중국 안에서 넘쳐나는 자금줄이 손을 뻗을 곳이 엔터시장에 집중해있어 너도 나도 엔터산업에 돈이 쏟아붓고 있다. 그 여파가 우리 같은 작은 나라에도 몇 방울 튀어 엄청나게 부풀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2~3년 안에 중국자본의 투자를 받은 엔터사업자들의 옥석이 가려지고 춘추전국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올 하반기 중국 자본의 투자 흐름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업계 관계자들은 포착하고 있다.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국장은 “올 상반기까지 중국 자본은 드라마 제작사 M&A를 통해 가져가려는 구조가 있었다. 이로 인해 자본 잠식의 우려가 나왔다. 하반기에 들어선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기업을 인수하려는 중국 자본의 유입이 아닌 개별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수익과 리스크를 함께 배분하는 구조”이기에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박 국장은 “중국 자본의 부정적 요소를 배제할 순 없지만, 영국이 할리우드 자본의 도움을 받고 있음에도 문화주권을 잃지 않고 콘텐츠 강국으로 성공한 사례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는 걸림돌이지만 양국간 교류는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미디어미래연구소가 개최한 ‘미디어리더스 국제포럼’에서 앨런 왕 변호사는 중국의 영화산업촉진법이 발효되면 합자기업도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영화산업촉진법은 일회성 영화촬영허가증 제도를 없애고 시나리오 심사를 간소화하는 등 영화시장 진출 문턱을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영화산업촉진법 초안에 따르면 인원, 자금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중국에서 처음 영화를 촬영할 경우에도 영화촬영허가증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2편 이상의 영화를 완성하고 법에 따라 상영한 뒤에야 영화촬영허가증을 취득할 수 있다.
또 민간자본과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영화산업에 자본을 유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확충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중국 내 영화산업이 보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산업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해외 자본 및 콘텐츠 유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왕 변호사는 “영화산업촉진법이 중국의 첫 번째 영화 관련 규제로 법제화되는 선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기존에는 법령 없이 행정관료에 의해 중국의 영화 규제가 이뤄졌기 때문에 복잡하고 논쟁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 대한 섣부른 장밋빛 전망은 금물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문화 코드’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앞서야 한다는 것. 한 영화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인기를 끄는 최루성 로맨스나 코미디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다”면서 “다만 중국 시장에서도 장르적 다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철저한 시장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에 의한 인력 유출이나 국내 시장 잠식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중국은 기회의 땅”이라며 “결국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엔터업계에선 보다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거대한 중국 자본의 투자로 제작한 콘텐츠가 글로벌 유통 창구를 만나면 새로운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을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케이블TV협회 박승범 홍보부장은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 드라마와 예능, 영화 등의 콘텐츠가 중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 선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주 국장 역시 “한국 시장이 넷플릭스에겐 중국에 진출할 수 있는 중개무역 같은 시장이다. 양측 모두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넷플릭스에선 중국시장에서 검증된 한국 콘텐츠를 통해 아시아를 공략하고, 한국은 글로벌 유통 채널인 넷플릭스를 플랫폼 삼아 중동, 남미, 영국 등에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가 생길 수 있다”고 봤다.
고승희ㆍ김기훈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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