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대우 기자] 한때 ‘미신’으로 홀대받던 중의학(中醫學)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세계로 굴기하고 있지만 한의학(韓醫學)은 정부의 무관심과 양방의 견제 및 한양방 갈등으로 국내에서조차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중국은 헌법에 ‘중의학을 육성ㆍ발전시키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민간이 활발하게 이용하면서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중의학을 담당하는 위생부 중의약관리국의 지난해 예산은 1조3634억원으로 한국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실의 220억원보다 62배나 많다. 중국중의과학원 연구원은 6000여명으로 산하병원 6개, 관련 연구기관도 8개가 있다. 반면 한국 한의학연구원은 143명이 전부이고, 그마저도 임상연구를 위한 산하 한의병원은 전무하다. 국립중의학병원은 중국에서만 3590개가 운영되고 있지만 한국은 공공의료기관중 한방의료가 제공되는 곳은 국립재활원과 중앙의료원, 보훈병원 3곳 등 총 5곳에 불과하다.
▶세계로 굴기하는 중의학=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이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중의(한국의 한의사)와 서의(의사)를 같이 중시하는 원칙을 세워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이 정착됐다. 중의학은 내과, 외과, 신경과, 피부과 등 대학병원에서 다루는 모든 과가 망라돼 있고 중의는 X-ray, 초음파, CT, MRI 등 최첨단의료기기를 자유로이 사용해 진료데이터를 축적, 치료효과를 검증한다. 응급상황을 빼고는 중의학 치료를 위주로 하고 기본적인 수술도 한다. 중의치료는 서의의 보완적 치료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뿌리내린 전통의학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중의병원은 치료와 연구는 물론 임상과 중약제제 개발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스(SARS)와 조류독감, 에이즈, 에볼라, 메르스 등 감염병의 중의학적 치료가 최근 중점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2003년 사스가 유행했을 때 광동성 중의원에 입원한 환자 122명을 치료하면서 중의과학원과 협력으로 5가지 진료방법과 절차 등 중의학적 치료법을 개발했고 임상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뎅기열 환자는 중의, 서의와의 결합 치료방법으로 증상을 24시간 이내에 완화(서의 단독 평균 61시간)시키고 완치율도 82%(서의 단독 50%)에 달할 정도로 성과를 거뒀다.
작년 메르스 사태 때에도 중국은 환자 발생 시 중의학 치료를 병행한다는 진료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한의사협회가 메르스의 공동치료를 제안했을 당시 의사협회가 거부한 것과 대비된다. 특히 중약을 양약과 같이 제형화한 중약제제는 6만여 종을 헤아릴 정도로 많고 해외로 수출되는 중약제제 규모만 연간 4조원이 넘는다. 정부가 1987년 56종의 한약을 허가한 뒤 28년동안 단 한 건도 더 허가하지 않고 있고, 한약제제 수출 ‘0원’인 한의학과는 천양지차다.
▶양방에 밀려 기어가는 한의학= 우리나라 국가보건의료체계는 양방 위주다. 국공립의료기관 중 국립중앙의료원 한의진료부, 국립재활원, 지역 보건소 등에서 일부 한의진료가 이뤄지고 있으나, 임상인력 충원 및 재정지원 등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의 의료전달체계 마지막 3단계를 담당하는 종합병원은 의사만 개설이 가능하다. 치과의사는 필수로 설치되지만 한의과는 필수설치 과목도 아니어서 공공의료적인 측면에서 기여할 기회조차 없다. 한의학이 의료전달체계에서 소외되다보니 한의약 육성 및 한약제제 발전을 위한 동력이 부족하고, 한의의료를 이용하고자 하는 국민들은 국민건강측면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 국공립병원 및 연구기관에서 한의진료 및 한의약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경우는 극히 미미할뿐 아니라 임상연구 및 기초연구를 담당할 인원 채용 또한 미진하다. 1999년 국립암센터에 한의연구와 한의진료과를 두기로 했으나 여전히 실행되지 않고 있다.
한의사협회는 “복지부에서 지난해 의사 2명을 특채하면서 의사출신은 18명으로 늘었지만 한의사 출신은 2명에 그치고, 그나마 보건의료분야 근무 한의사는 1명뿐”이라며 “의사중심의 ‘기형적’ 보건의료제도는 복지부 내 의사중심 특채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중국보다 뛰어난 한의학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양한방 갈등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한발도 더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세계 의학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한의학 육성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공수표’된 한의학육성계획= 복지부가 3차 한의약육성발전계획(2016~2020년)을 추진하고 있지만 1,2차 계획과 마찬가지로 양한방 갈등, 정책수행 의지부족 등이 재연될 경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차 계획 당시 저출산 고령화사회 대응을 위해 한방 불임치료 표준 및 불임시술에 대한 재정지원계획을 수립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한의협을 중심으로 민간차원에서 진행된 한의학 난임치료는 25~30%의 성공률로 양방 체외수정과 비슷한 성과를 냈다. 게다가 비용이 589만원으로, 양방의 인공수정(1105만원)이나 체외수정(1224만원)보다 훨씬 싸다. 정부가 2014년 난임진료자 7만3034명에게 389억원을 지원, 1만5636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는데 한의로 할 경우 같은 예산으로 14만명 이상을 지원해 3만명 이상의 신생아 출산을 기대할 수 있다. 양방대비 효과도 좋고 2차 계획에도 포함됐지만 정부 스스로 세운 계획을 방치한 것이다. 암 당뇨 뇌혈관질환 등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한약제제도 개발, 건강보험 등재를 하기로 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또 4대 중증 질환의 보장성 강화에 한의치료 행위를 누락하고, 한의 의료행위인 첩약, 약침술 등에 비급여 적용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 ‘10대 난치병’에 대해 중의학으로 예방과 치료연구를 진행ㆍ보급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한의협 관계자는 “현 식약처고시상 한약의 효과를 제약화할 경우 생약제제라는 이름의 양약으로 분류돼 양방의사들이 처방하고 있다”며 “한의계의 자발적인 현대화, 과학화 의지를 꺾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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