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걸그룹의 계절’이다.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언론에 공식 쇼케이스를 가지고 컴백을 알린 걸그룹은 약 10개 팀에 달한다. 쇼케이스 없이 앨범을 발매한 이름 없는 걸그룹까지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가요계엔 정설 아닌 정설이 있다. “걸그룹은 돈이 안 된다”, “걸그룹은 생명력이 짧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걸그룹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멤버 교체와 영입을 통해 재정비(달샤벳, 씨엘씨, 브레이브걸스)하고, 활발한 사전 프로모션으로 기대감을 높인 뒤 데뷔(우주소녀)하고, 기존 그룹을 변주한 유닛(AOA 크림)으로 돌아온다. 중견 걸그룹(포미닛 레인보우)의 절치부심과 신흥 강자(마마무 여자친구)의 공세가 맞붙는다. 본격 성인 걸그룹(스텔라)을 표방하고, 색깔찾기에 고심(레인보우) 중이다.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는 팬들이 아니라면 이들의 그룹명과 멤버들의 이름, 노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음악방송 무대엔 이 보다 더 많은 걸그룹이 등장, 시장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듯 보여도 대형기획사부터 군소기획사에 이르기까지 ‘걸그룹 제작’을 놓치 않는다. ‘아이돌’이 아니라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업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기획사마저도 ‘걸그룹’이 성공적으로 안착해 초기 투자비용을 메우고, 목표 수익까지 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이돌그룹 한 팀을 안정적으로 제작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약 20억원에 달한다. 최소 15억원은 투자해야 앨범 한 장을 발매할 수 있다. 데뷔까지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최소 한 달간 새 앨범 홍보 등에 들어가는 소위 ‘영업’ 비용은 평균 1억원이라는 것이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투자 비용은 막대한데, “걸그룹은 보이그룹에 비해 팬덤 형성이 쉽지 않아 돈이 안 된다”고 한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트렌드는 변하기 마련이지만 한 때 모든 걸그룹이 섹시코드를 내세웠던 데에는 단기간 수익을 내기 위한 전략이라고 판단한 기획사들이 적지 않았다. 섹시 컨셉트로 시선을 끌고 각종 행사에 투입해서라도 본전을 내야했던 사정도 있다”고 언급했다.
국내 굴지의 대형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가요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음반 판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절이 이미 지났다”라며 “음반과 음원은 마케팅의 수단이고, 공연과 MD 사업을 통해 수익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강력한 팬덤을 갖춘 보이그룹의 경우 10대부터 30대까지 확장된 여성팬들을 등에 업고 최고 연매출 60억원까지 달성하기도 한다. 남성팬의 경우 결집력이 약한 데다, 지갑을 열어 ‘굿즈’를 구입하는 적극적인 팬층이 아니기 때문에 “보이그룹이든 걸그룹이든 여성팬을 잡아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재의 음악시장은 팬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요관계자들은 소녀시대와 카라 시절만 해도 “넥타이 부대가 음반을 사고 공연을 관람”했지만, 현재 걸그룹은 “걸크러시를 할 수 있는 걸그룹이 아니라면 팬덤 형성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한다. 아이돌 시장의 주요 팬덤을 형성하는 것은 10~20대의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을 잡아야 산다”는 것이다.
최근 몇 해 사이 등장한 ‘걸 크러시’(‘Girl’과 ‘Crush’의 합성어)라는 용어는 이 같은 이유들로 걸그룹 생존전략의 필살기로 떠오르고 있다.
관계자들은 ‘걸 크러시’에 대해 “여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나, 이는 ‘센 언니’ 컨셉트부터 ‘여동생’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단지 비주얼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외모는 물론 인성, 실력까지 갖춰야 하며”, 그로 인해 ”닮고 싶거나 동경할 만한 이미지가 만들어져야 한다“(큐브엔터테인먼트 관계자)고 강조한다.
같은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가요 관계자들은 이 때문에 ‘털털하고 당당한 이미지’와 ‘여성의 심리를 대변할 수 있는 노래 가사’ 등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여중, 여고에서 배구부나 농구부 혹은 한 학년 선배들 중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여학생들이 인기가 많은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난데없이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 사춘기 시절부터 내재된 정서라고 볼 때 ‘걸 크러시’ 현상은 대중문화 시장에도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걸 크러시’의 대표주자라고 해서 모두가 ‘티켓 파워’를 갖추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여성팬의 수요가 없다고 해서 걸그룹이 반드시 수익 달성을 하지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인기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두루 속해있는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걸그룹의 경우 보이그룹보다 팬덤은 약하지만 대중성이 뛰어나다. 광고와 행사를 통해 다양한 매출을 올리는 쪽도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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