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변호사의 인생반전 스토리

노화종합고등학교 취업반 졸업.

박준영 변호사는 소위 말하는 실업계 출신이다. 전에 다니던 학교는 정학을 밥먹듯 하다 자퇴했다. 담임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준법의식이 부족하다’고 적었다. 가출을 했다. 서울 왕십리 프레스공장, 인천 정비 공장을 돌아다니며 막일을 했다. 배달일도 하고 오토바이도 훔쳐 탔다. 담배 피우다 술 마시고 싸웠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함께 찍은 초등학교 졸업사진은 영정사진이 돼 버렸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또래와 어울리다 엇나갔다. 그런 박 변호사를 붙잡은 것은 어머니가 남겼던 유서와 새어머니의 보살핌이었다.

‘엄마가 없다고 술 먹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그것같이 불쌍하고 불행한 것 없다. 어린 너희를 놔두고 가는 내 마음을 헤아려다오(어머니의 유서).’

새어머니는 제발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따야 한다며 박 변호사를 잡았다.

박 변호사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또래보다 1년 늦게 목포대 전자공학과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갔다. 제대 후에 보니 장학금이 없어졌다. 복학하면 쓸 생활비를 위해 우럭 양식장에서 일했던 게 쓸모 없어졌다.

화가 났다. 이런 상황을 뒤집고 싶었다. 군대 한달 고참으로 법대에 다니던 ‘배 병장’이 사법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따라 들어갔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지방대 중퇴인 박 변호사는 고시촌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민법책 한자를 못 읽어 혼자 옥편 찾아가며 공부했다. 샤워할 때도 강의 테이프를 들었다. “유난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시를 시작한지 1년 반만에 본 1999년 1차시험에서 2점 차로 떨어졌다. 그래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이듬해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돌아가시며 흔들렸다. 외삼촌이 한달에 60만원씩 생활비를 보태줘 다시 공부했다. 2002년 4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에 붙었지만 박 변호사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은인인 외삼촌에게 1억원을 빌려줬다. 외삼촌의 사업이 망했다. 카드 8개로 빚을 돌려막는 신세가 됐다. 사법연수원 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채무증명서’를 가지고 연수원 휴직을 했다. 지도교수는 “채무증명서로 휴직한 놈은 연수원 사상 너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휴직한 1년 동안 과외로 돈을 벌었다. 빨리 변호사가 돼 돈을 벌기로 마음 먹었다.

변호사로 개업했어도 박 변호사의 상황은 썩 좋아지지 않았다. 사무실을 개업했지만 딱히 수임되는 사건은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국선 변호를 맡았다. 그렇게 밀려 들어오던 사건 중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을 받았다.

박 변호사의 운명이 바뀌었다.

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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