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권력 대신 자본확충펀드 내세운 이주열 한은 총재 발언 배경 촉각 한은 “국책은행 직접출자는 재정정책의 또 다른 형태…결국엔 혈세 부담”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을 두고 정부와 한국은행의 시각차가 첨예해지고 있다.
정부가 국책은행에 대한 한은의 직접 출자를 희망하는 데 대해, 한은은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 형태의 자본확충펀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은총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제 49차 ADB 연차총회를 마치고 나란히 귀국함에 따라 국책은행에 대한 자본확충 방안을 둘러싼 양측의 논쟁은 장소를 서울로 옮겨 재개될 전망이다.
▶ 한은은 왜 출자 대신 대출 방안을 제시했나=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한은은 독립성을 가진 중앙은행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하며, 원칙론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만한 타당성이 필요하고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이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손실 최소화 원칙에서 보면 아무래도 출자보다 대출이 부합한다”고 말했다.
결국, 독일 출국 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은이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던 이 총재의 언급은 정부의 직접 출자에 화답하는 것이 아닌, 중앙은행의 대출을 염두에 둔 것이었음이 곧 확인됐다.
한은이 이처럼 ‘자본확충펀드’를 골자로 한 대출 카드를 들고 나온 데는 부실화된 일부 특정 산업에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이 타당한지 에 대한 부담감이 적잖기 때문이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통화량을 늘리더라도 화폐 발행의 순증액 만큼통화가치의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이때 화폐 발행에 따른 자본 확충의 효과는 일부 특정 기업이 누리는 데 반해, 화폐 가치 하락의 피해는 전 국민들이 안아야 하는 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한은은 반대 논리로 내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한은이 구조조정 자금을 필요로 하는 국책은행에 직접적인 출자를 하더라도 결국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으로 시중의 통화량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게 돼, 추경과 같은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판단도 한은이 대출 방식을 요구하는 논리가 되고 있다.
정부의 재정정책과 한은의 직접 출자가 결국 근본적으로 국민의 부담을 가져오게 되는 데서 는 동일하다는 것.
통상 한은이 본원 통화(한은이 시중은행에 공급한 돈) 공급을 확대할 때는 현재의 기준금리인 연 1.5%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시중에 풀린 돈을 다시 흡수하기 위한 통화 관리 비용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한은은 보통 금융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 등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한다.
이때 지급되는 이자 만큼 한은의 수지는 악화되고, 결국 이 만큼이 정부에 들어갈 세수의 감소로 반영된다.
현행 법상 한은은 매년 순이익금의 30%를 자체 적립하고 나머지를 협의를 거쳐 정부에 세입(세외수입)으로 납부하기 때문이다.
결국 통안증권 발행에 따라 줄어든 이익금은 국민의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 구조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한은의 직접 출자 효과가 줄어든다는 것이 한은의 입장이다.
▶한은 과거에도 특별대출로 위기 진화= 한은은 과거에도 한은법에 규정된 기본 책무인 ‘금융안정’을 위해 ‘최종대부자’로서 특별대출 제도를 운용해온 전력이 많다.
이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4인 이상의 찬성으로 실행이 가능하다.
이 총재가 최근 한 사례로 언급한 ‘은행자본확충펀드’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은행의 자본을 확충해주기 위해 운영된 바 있다. 한은이 산업은행을 통해 자본확충펀드에 3조2996억원을 지원했고 펀드는 은행의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은행의 자본확충을 지원했다. 펀드를 통해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시중에 신용 공급을 확대하고 기업구조조정 작업도 원활하게 추진되게 하려는 취지였다.
이에 앞서 1992년 8월엔 투신사의 경영악화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되자 한은이 한국ㆍ대한ㆍ국민투자신탁 등에 2조9000억원을 대출해준 바 있다. 한은은 또 1997년 외환위기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때 금융권에 총 10조7656억원을 특별 대출해주기도 했다.
1997년 9월 유동성이 부족해진 제일은행에 1조원을 지원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엔 부도유예협약 기업에 대한 여신이 자기자본의 50%를 넘는 16개 종합금융회사에 대해 거래은행을 통해 연 8%의 금리로 1조원을 빌려줬다.
또 같은 해 12월 금융회사들의 업무정지가 잇따르며 자금거래가 위축되는 등 금융시장의 위기가 확산하자 은행에 6조7671억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 증권 및 종금사에 대해서는 한국증권금융과 신용관리기금을 통해 1조1271억원, 8천710억원을 각각 빌려준 뒤 단계적으로 이를 회수했다.
이어 2006년 2월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채무 재조정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을 통해 자산관리공사에 4462억원을 연 2%의 금리로 빌려줬다가 2006년 말 전액 회수했다.
이밖에도 2011년부터는 특별대출과 관련해 긴급여신 요건을 완화하는 한은법 개정이 이뤄져 긴급상황시 선제적으로 긴급여신을 취급할 수 있게 됐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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