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너나 없이 달려들던 새로운 형태의 ‘육아예능’이 누린 전성기는 길었다. 한 때는 호황을 맞았다. 햇수로 4년째, 이미 오래 버텼다. 하지만 ‘과유불급’이었다.
현재 방송가에 남은 육아예능은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와 ‘오 마이 베이비’(SBS), 종합편성채널 ‘엄마가 돌아왔다’까지 세 편 뿐이다. 육아예능의 아이콘이었던 출연자가 채널을 바꿔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관심은 현저히 줄었다.
‘육아예능’의 흥망성쇠는 결국 ‘장기집권’의 결과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오래 버텼기에 식상해졌고”,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찾으려는 시청자들에겐 부정적인 모습이 부각(정덕현 대중문화편론가)됐다는 해석이다. ”신기했던 연예인 가족의 모습에 공감하기 보단 거부감“(하재근 평론가)이 커지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공감할 수 없는 괴리감과 박탈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집 안 곳곳 설치한 수십개의 카메라가 담아내는 연예인 가족의 일상은 ‘보편적 시청층’을 대상으로 하는 TV가 전시하기엔 부적절했다는 진단이 뒤늦게 나온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관찰카메라 형식의 육아예능 포맷을 최초로 시도하며 ‘육아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했다.
엄마 없이 보내는 48시간 동안 연예인 아빠와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고군분투는 웃음을 유발했다. 시간을 거듭하자 매주 새로운 일상을 사는 아빠의 ‘엄마 도전기’는 대중 정서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관찰예능’이라는데 PPL(간접광고) 논란도 적지 않았다. “제작비 충당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예능PD들이 입을 모으지만, 보기 좋게 꾸며진 연예인 가족의 광고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육아의 고충은 공통분모지만, 삶의 무게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육아예능’으로 인한 시청자들의 심리 동향을 파악한 논문까지 최근 등장했다. ‘미디어, 젠더&문화’에 게재된 ‘가족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시청과 사회, 경제적 계층 소속감의 상호작용이 가족건강성 지각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이들 프로그램은 “여유 있는 가정생활과 이상주의적 관계를 노출시키고 있어 중상위 계층만이 자신의 삶과 유사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대대로 ‘서민들의 놀이’였던 TV가 연예인들의 여유로운 일상을 전시하니 상대적 박탈감과 괴리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즐거워야할 예능 프로그램이 도리어 계층간 위화감만 조성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집안을 들여다는 관찰 형태의 육아예능의 등장 이후 다양한 논란과 부정적 시각이 촉발됐다”며 “연예인들의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시청률 향상엔 도움을 줄 순 있지만 공감대를 형설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청자가 자신의 자녀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을 수월하게 제공하는 연예인 부모의 모습을 마음 편히 즐길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일상만큼 위화감을 주는 요소가 없는데, 그 같은 일상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문제가 됐다. 서민적인 가정을 보여줄 수도 있었으나 기존 육아예능은 변화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정서적 괴리감과 더불어 관찰카메라 형식의 육아예능은 윤리적인 문제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먹고 입고 자는 일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내는 이들 프로그램은 TV라는 매체를 통한 훔쳐보기에 가깝다.
정덕현 평론가는 “가족예능이기 때문에 건전한 프로그램처럼 보일지라도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른의 볼거리가 됐다”며 “초반엔 아이들의 순수함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한 프로그램이었으나 시간을 반복하니 도촬과 엿보기에 대한 윤리 문제가 나오는 시점”이라고 봤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호감을 가질 만한 매력적인 연예인 가족을 섭외하기 위해 사력을 다 하지만, 연예인으로서도 관찰형 ‘육아예능’에 출연하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 앞에 모조리 노출시키는 것에 대한 껄끄러움 때문이다. 배우 박성웅은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 당시 “육아예능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왔지만 출연할 생각이 없다”며 “부모라고 해서 아이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상생활의 모든 모습을 전 국민 앞에 노출하게 할 수는 없었다”고 이유를 전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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