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기훈 민상식 (진도) 기자 ] 세월호 침몰 14일째를 맞는 29일 오전, 진도 실내체육관 전광판에 기록된 사망자 수는 193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날 오전 2시께 4구의 시신이 추가로 수습됐다.
하지만 수색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이날부터 내달달 1~2일까지는 물살이 가장 거센 사리 때에 해당한다. 조금에 비해 물살이 40%가량 강해진다.
실종자 가족 김모(46) 씨는 사고 전날 딸과의 통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전날 밤에 전화로 잘 다녀오라고, 좋은 추억 만들라고 했는데….” 김 씨는 마른 기침을 내뱉다 울음을 쏟아냈다.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은 김 씨는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실제 많은 실종자 가족들은 슬퍼할 힘도 분노할 힘도 없어 보였다. 팽목항에서 만난 한 가족은 기자에게 “어차피 내가 한 말 그대로 써주지도 않을 거면서 인터뷰는 왜 하냐”고 쏘아붙였다. 정부ㆍ언론에 대한 불신, 슬픔과 분노에 지쳐 마음은 폐허가 됐다.
사고 후 며칠간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은 그야말로 거대한 ‘통곡의 바다’였다. 수백명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팽목항의 파도소리를 삼키고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오열 끝 탈진하거나 정신적 충격으로 쓰러지는 환자도 속출했다.
하지만 수색ㆍ구조 작업이 지연되며 슬픔은 분노로 바뀌어갔다. 사고 이튿날인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지만 진심어린 사과는 없었다. 신속한 구조를 약속했지만 발견된 실종자 가운데 생존자는 전무했다.
불통ㆍ불신은 슬픔의 전극을 분노로 바꿔놓았다. 지난 19일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는 “더는 이렇게 기다릴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지금 당장 버스를 불러 청와대로 가자. 박근혜 대통령에게 따지자”라며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가족은 “머리에 빨간 띠라도 매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노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20일 새벽, 분노한 가족들은 버스에 오르고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버스는 가로 막히고 가족과 경찰 사이 몸싸움이 벌어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임시거처에 머물며 기다림과 싸워야 했다.
21일 가족들은 허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에도 수색 과정은 지진부진했고 가족들은 때때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노 뒤 찾아오는 것은 무력감이었다. “우리 아들이 바다에 수장돼 있는데 무작정 기다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정모(45) 씨는 하소연했다. “또 정부는 자꾸 약속은 하는데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 이게 무슨 나라냐, 누굴 위한 나라냐?”고 반문했다.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ㆍ정부의 존립근거는 소속된 개인들의 안전을 보호해주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이번 사고로 개인들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이번 사고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통치 대상으로만 생각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경악스러운 사례”라며 “이 상황에서도 가족들에게 마냥 ‘국가를 믿어라’, ‘국가의 틀 안에 있어라’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평가했다.
한편 가족들을 바라보는 자원봉사자들도 속이 탄다. 자원봉사자 김은영(가명ㆍ26ㆍ여) 씨는 “아들ㆍ딸을 찾은 실종자 가족들이 차례로 떠나면서 남은 가족들이 더 위로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팽목항이 자리한 임회면 주민이자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한 남성도 “팽목항에 남은 가족들은 이제 울고 불고 할 힘도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병수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실종자 가족들의 위기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쉽게 말해 트라우마는 교통사고가 끝났지만 계속 교통사고가 두려운 것인데, 실종자 가족들은 새로 희생자가 수습될 때마다 끊임없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그는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을 감히 말로 묘사할 수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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