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10년차 커리어우먼인 윤 모씨(36)는 최근 기분전환 겸 봄철에 맞는 화사한 색깔의 립스틱을 구입해서 발랐다가 입술이 퉁퉁 붓고 벗겨지더니 진물도 생기는 낭패를 경험했다. 립스틱에 함유된 양모 기름과 왁스 성분의 강한 흡착성이 공기 중의 먼지·세균·병균·금속 미립자를 끌어당기기도 하는데, 이것이 입술 점막에 붙어 알레르기성 염증이 생긴 것이다.
알레르기는 일반적으로는 없어야 할 과민 반응이 생기는 면역 질환이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은 잘 알려진 꽃가루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 온도, 약물, 금속 등 다양하다.
▶ 과민 반응으로 인한 면역 질환, ‘계절성 알레르기’
가장 흔한 것은 특정한 계절에만 증세가 나타나는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이다. 알레르기비염은 인구의 5~20%가 앓고 있는 흔한 질환으로 주로 3~4월 꽃가루 날리는 봄이나 9~10월 등 환절기에 발생한다. 알레르기비염은 환절기에 주로 발병하는데 어느 틈엔가 증상이 없어져 다 나았다고 생각하다가 또다시 증상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강혜련 교수는 “몸에 이미 알레르기비염을 일으킬 수 있는 알레르기 염증반응 회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알레르기염증반응이 생기는 회로가 만들어지는 것은 교통사고처럼 일시적인 외부요인에 의해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타고난 면역학적 내적 특성과 엄마 뱃속에서부터 출생 후 노출된 외부환경에 이르기까지 외적인 영향이 복합적으로 꾸준히 작용하여 어느 시점에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부모 중 한 쪽이 알레르기 질환을 가질 때는 40%, 양쪽 다 알레르기 질환을 가질 때는 70%의 확률로 자녀에게 알레르기질환이 나타난다. 같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노출된 외부 환경의 차이에 따라 알레르기질환의 발생이 결정된다.
따라서 알레르기질환이 발생했다면 그건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내력과 우리 인생의 궤적이 고스란히 반영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에게 잘 나타나는 ‘식품 알레르기’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이 식품 알레르기로 쇼크 증상을 겪고 나서 10개월간 뇌사 상태에 빠져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적이 있다.피해 학생에게는 심한 우유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학교 급식 때 우유가 든 카레를 먹고 호흡곤란·저혈압을 일으키다 뇌사 상태까지 이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잘 모르거나 증상을 간과한다. 가려움증 등 증상이 미미하고 일시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식품 알레르기는 장 점막이나 면역체계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어린이에게 잘 나타난다.
환자는 국내 인구의 약 6%인데, 그 가운데 80% 이상이 영유아·어린이다.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어린이의 35%, 천식이 있는 어린이의 10%가 식품 알레르기도 함께 가지고 있다. 특정 식품을 먹었을 때 2~3시간 이내 이상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식품 알레르기를 의심할 수 있다. 자신이 먹은 식품과 이상 증상을 모두 기록하는 ‘식품 일기’를 쓰면 정확한 진단에 도움이 된다.
병원에서는 피부에 특정식품의 단백질이 든 시약을 떨어뜨려 증상을 보는 ‘피부 반응 검사’나 특정 식품을 먹고 난 뒤 증상을 확인하는 ‘식품 유발 검사’로 알레르기를 확인한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대표 식품은 달걀(50%), 우유 및 유제품(25%), 어류(6%)다. 하지만 어린이는 정확한 진단 없이 알레르기 의심 식품을 무조건 피하면 영양결핍·성장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식품을 정확히 진단받고 영양소를 대체할 수 있는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
▶ 햇빛에 발진이 있다면 ‘햇빛 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를 앓는 경우도 있다. 자외선이 체내에서 면역반응을 과하게 일으켜 좁쌀 모양의 발진, 홍조 등이 생긴다. 겨울·봄에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지 않았다가 여름에 갑자기 햇빛 노출이 많아지면서 나타난다. 발진 등은 수 시간 내 가라앉는 경우도 있고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제를 먹거나, 국소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른다. 항우울제, 이뇨제, 소염제, 항생제 등 광과민성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 중에서도 햇볕을 쬔 뒤 습진·두드러기 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루푸스·낙엽성 천포창 등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사람도 햇볕을 쬐면 병이 악화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약물 알레르기’
약을 복용하고 한 시간 내 두드러기가 나고 입술·눈가 등이 붓는다면 약물알레르기를 의심해야 한다. 약물 알레르기는 면역세포가 약을 바이러스·세균 같은 나쁜 물질로 여겨 과도하게 공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스피린·이부프로펜·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진통소염제, 항생제(페니실린 계열) 등 두통·근육통·감기·염증에 흔히 쓰는 약이 약물 알레르기를 많이 일으킨다. 유병률이 1.5%로 적지 않다.
약물 알레르기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중증일 경우가 많다. 혈압이 떨어져 쓰러지거나 후두·기관지가 부어 숨을 못 쉬는 아나필락시스(심한 쇼크 증상)가 나타날 수 있다.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사람이 약물 알레르기 발생 시 아나필락시스 위험이 더 크다.
약물 복용 후 2~3주가 지나 증상이 나타나는 지연성 약물 알레르기도 있다. 피부 증상뿐만 아니라 발열·기침·설사·구토 등 증상이 다양해 감기 등 다른 병으로 오인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약물 알레르기가 있다면 어떤 약 성분에 과민반응을 하는지 정확히 확인하고 그 약을 먹지않아야 한다. 약을 물에 녹여 피부에 바르거나 패치로 붙여 반응을 검사하는 피부반응검사, 약을 소량 먹게 한 뒤 피부·혈압 등의 변화를 살피는 검사를 받으면 된다. 대학병원 등에서는 약물 알레르기 환자에게 ‘약물 과민반응 병력카드’를 만들어준다. 병원, 약국 등을 방문할 때마다 이 카드를 제시하면 약물 알레르기를 예방할 수 있다.
코감기와 알레르기비염은 서로 다른 질환이다. 코감기와 구별되는 알레르기비염의 특징적인 증상은 맑은 콧물과 함께 코가 간질간질하면서 연신 재채기를 하는 것이다. 감기는 바이러스감염 때문에 생기기 때문에 이를 처치하기 위해 혈관을 타고 많은 백혈구가 코로 몰려오고, 바이러스와 싸우고 전사한 백혈구들이 누런 콧물로 나오게 된다.
이에 반해 알레르기비염은 코점막에 알레르기염증반응에 주로 관여하는 비만세포들이 히스타민이라는 혈관을 확장시키는 물질을 다량 분비하면서 코점막 아래에 있는 혈관들이 늘어나 혈관 속에 있던 물성분이 점막으로 빠져 나오기 때문에, 마치 물처럼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게 된다.
히스타민은 가려움증도 유발하여 코와 눈이 간질간질해지고 이 때문에 발작적인 재채기를 하게 된다. 맑은 콧물, 눈코 가려움, 재채기와 더불어 코막힘도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감기에 걸렸을 때 흔히 나타나는 코와 목이 따끔거리고 열이 나는 증상은 알레르기비염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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