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세중나모회장 비리의혹사건, C&그룹, 청목회, 한화그룹, 태광그룹 의혹사건 수사 등 검찰이 지난해 가을 부터 의욕적으로 몰아쳤던 사정이 설을 고비로 일단락됐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이 때문에 검찰 사정의 근본적인 동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설 연휴 가족 친지의 수많은 얘깃거리 중 하나로 오를지 모르겠다.
40여억원이나 되는 돈을 받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알선수재 혐의는 결국 청탁받은 일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는 기관에 대한 실제 알선행위가 있었는지를 밝혀내지 못해 ‘반쪽’이라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였기에 천 회장에 대한 수사결과는 관심을 모았다.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소문난 C&그룹 비리 역시 오너의 개인비리라는 선에서 끝나고 말았다.
청목회 입법로비 의혹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20여명이 연루됐다고 흘리고 국회의원 등 정치인 10여명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정도로 대단한 일 처럼 느끼게 하더니 결국 국회의원 6명만을 기소하는데 그쳤다. 이 마저도 전부 유죄 판결되리란 보장도 없다.
한화 수사는 수십곳을 압수수색하면서 광범위한 자료를 챙기고도 번번히 구속영장이 기각돼 검찰의 수사실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비해 현정부 권력실세가 연루된 것으로 소문난 태광수사 과정에서는 압수수색 사실을 사전에 예고하면서 결국 증거물을 제대로 건지지도 못했다.
남은 것은 건설현장 식당(속칭 함바집) 로비 의혹사건 등 몇개 안된다. 함바 비리에서도 당초 ‘성층권’에 떠돌던 소문과는 달리,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제외하곤 도마위에 올랐던 전현직 정-관계 인사들이 하나 둘씩 혐의를 벗는 양상이다.
민간인 사찰 등 현정권에 불리한 수사는 여지없이 중도하차나 다름없는 결과를 낳았고, 구정권 공공기관장의 비리 의혹과 촛불시위 혐의자 등 ‘정치적’ 사건 관련자에 대해 줄줄이 무죄판결의 철퇴를 맞은 검찰이다.
법조인들은 검찰의 이같은 ‘사정 실패’를 ‘신뢰의 부재’에서 찾는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라는 구시대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었던 건 노무현 정권때 측근비리 수사가 계기였다. 샅샅이 뒤져서 살아있는 권력의 실세들을 단죄했다. 하지만 작금의 검찰 행태는 다시 구시대적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다. 권력실세의 ‘권’자만 나오면, 그 사건은 용두사미가 되기 일쑤였던 것이다. 따라서 법적 균형감 속에 펼쳐지는 검찰의 소신이 어느때 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상당수 국민은 수사결과와 방법론 상에서 검찰이 편향된 잣대와 자세를 갖고 있다고 불신하고 있다. 법 집행을 모두가 신뢰해야 하는데, 헤럴드경제와 케이엠조사연구소가 신년벽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치적 목적이 있는 표적사정이었다’는 응답이 32.3%에 달했다. 국민 세명중 한명은 검찰 수사에 불신의 뜻을 표한 것이다. ‘공정사회를 위해 필요했다’(24.9%), ‘검찰의 고유업무를 수행한 것’(23.7%)이라는 두 응답을 합해도 절반을 넘지 못한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19.1%였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외풍’에 대한 검찰의 맷집 부족을 사정 실패의 원인중 하나로 든다. 야당 수뇌부가 거론되거나 의원 여럿이 거론되는 사건이 진행될때 여의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만에 검찰은 초연하지 못했다. 검찰이 ‘사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사건에서 정치인 이름이 나오지 않은 사건이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건질만한 결과는 별로 없었다.
베테랑 특수수사 지휘관 출신인 한 전직 고위검찰간부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전제로, “요즘 특수부 검사들이 증거를 제대로 찾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구시대적인 진술에 의존한다”면서 “검찰 선배들이 그토록 공들여 만들어 놓은 수사기법을 발전시키고 실력을 배양하기는 커녕 오히려 퇴보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설 연휴를 지난뒤 쇄신인사 등을 거쳐 검찰이 어떻게 환골탈태할지 주목된다. 행여 검사 개개인의 출세가도를 염두에 두고 국민이 부여한 검찰권을 행사했다면, 이토록 불쌍한 국민도 없을 것이다.
홍성원 기자/ hongi@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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