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부호 워런 버핏이 주장한 ’부자 증세론’이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대세로 자리잡았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 프랑스, 벨기에에 이어 독일에서도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선 것. 부호들의 자발적인 동참에 힘입어 유럽 각국 정부도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자증세를 속속 추진하고 있다. 반면 각국에서 부유세 논쟁이 불붙는 등 부자 증세에 대한 반발 움직임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 슈퍼리치들 앞다퉈 증세 청원= 30일 외신에 따르면 독일과세연맹(DSG)은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자들에게 특별한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토마스 아이겐할터 연맹 회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몇년에 걸쳐 총 2500만유로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의사, 기업가 등 부자 50명이 만든 모임인 ‘자본세를 찬성하는 부자들’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 앞으로 보내는 성명서를 통해 “50만유로(7억7500만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이들에게 향후 2년간 금융자산 총액에 5%의 부유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이 부유세를 납부하면 독일 정부는 1000억유로(155조원)를 더 거둘 수 있게 된다.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부유층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며 세금을 더 내자고 주장한 후 줄을 잇고 있다.
앞서 로레알 그룹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 등 프랑스 대표적인 부호 16명은 부유층에게 특별세를 매겨달라고 청원했다. 벨기에 국적 항공사 브뤼셀 항공의 공동창업주도 지난 28일 “거부들에게 한시적으로 위기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이탈리아의 대부호 루카 디 몬테체몰로 페라리 회장도 “나에게 세금을 더 걷으라”고 자청했다.
▶거꾸로 간 伊 부유세 철회= 재정적자에 직면한 각국 정부도 부자 증세에 적극적이다. 31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스페인 정부가 3년 전 폐지했던 ‘부유세’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영국에서는 집권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이 부유층을 대상으로 ‘토지세’와 200만파운드(35억원) 이상 나가는 고급 주택을 보유한 가구에 매기는 이른바 ‘맨션세’ 등 부과를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부호들의 특별세 청원 직후인 24일 110억유로 규모의 재정적자 감축안을 내놨다.
반면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균형을 위해 고소득층에 부과하려던 연대세 신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29일 AFP통신은 미디어 재벌이자 억만장자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부자증세에 부정적이었다는 점을 백지화의 배경으로 꼽았다.
이에 대해 FT는 “이탈리아 정부의 긴축재정을 위해 연대세 도입이 여전히 절실하다”며 “이같은 메시지는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어 일관성있는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유세 양극화 해법 =내년 선거를 앞둔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는 부자 증세가 정치현안으로 떠올랐다. 각국 정치권은 부자 증세를 통해 생기는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분주하다. 독일에서는 ’부유세‘ 도입 여부를 놓고 정치권 입장이 엇갈리는 등 논쟁도 불붙었다.
FT는 부자 증세 정책이 예산감축을 추진하면서 내년 재선을 노리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분석했다. FT는 “사르코지가 좌파의 옷을 훔쳐입고 재선 행보를 잽싸게 시작했다”고 평했다.
이어 스페인의 부유세 재도입 검토에 대해 “부유세로 재정적자를 모두 해소하거나 많은 액수를 증세할 수는 없지만, 사회 전반에 긴축재정의 짐을 함께 부담한다는 정치적인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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