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 월하 스님 등의 뒤를 이어 14일 조계종 종정(宗正)에 추대된 진제(眞際·77)스님은 ‘남진제 북송담’으로 일컬어지는 대선사다. ‘남(南)진제 북(北)송담’은 중국 당나라 때 ‘남설봉 북조주(南雪峰 北趙州)’에 빗댄 말로, 남쪽에는 대구 동화사의 진제스님이, 북쪽에는 인천 용화선원에 있는 송담스님의 도력(道力)이 지극히 높음을 일컫는 말이다.
이같은 표현이 불교계에 널리 회자될 정도로 진제 스님은 우리나라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자 대종사다. 스님은 또 경허-혜월-운봉-향곡스님으로 이어지는 선불교 주류 선맥의 ‘법손(法孫)’이다.
이날 종정추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제 13대 종정에 추대된 뒤 진제 스님은 조계사에서 부처님께 추대 사실을 알리는 헌향과 삼배를 올렸다. 이어 총무원장 등 종단 부·실장스님으로부터 하례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스님은 “산승(山僧)은 앞으로 우리 종단의 화합과 수행을 위해 원로스님들의 고견을 받들 것이며, 동양정신문화의 정수인 간화선(看話禪·화두 참선법)을 널리 진작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수락의 말을 전했다.
또 “우리 인간의 주인, 주체는 정신이다. 오늘날 세계는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치관이 전도돼 지구상의 질서가 허물어지고 점점 혼탁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이웃과 고통받는 중생이 있는 곳에 우리 모두가 아픔을 함께 해야 되겠다”고 밝혔다. 이어 “큰 지혜를 가진 이는 어리석어 보임이나,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함이요, 만인에게 진리를 베풀고 거두는데 또한 걸림돌이 없음이로다"라는 법어를 내놓았다.
조계종에서 종정은 종단의 법통을 상징하는 정신적 지도자다. 또 최고 권위를 갖는 구심점이다. 때문에 그동안 최고의 선승(禪僧)이 추대되며, 법어를 통해 불가와 세속에 가르침을 전한다. 단 종무 행정에는 관여치 않는다.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진제스님은 출가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1953년 해인사로 불공을 드리러 친척을 따라 해관암에 들렀다가 석우스님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석우스님은 “세상의 생활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값진 생활이 있으니 해보지 않겠는가”라 물었고, 진제스님은 “무엇이 그리 값진 생활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석우스님이 “범부(凡夫)가 위대한 부처 되는 법이 있다.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지않은 셈치고 수행의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했고, 이에 스무살의 진제스님은 출가를 결심했다.
1967년에는 향곡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이어받는다. 당시 진제스님은 향곡스님 문하에서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벼랑에 매달렸을 때 아래를 지나던 다른 스님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을 때 어찌 해야 하는가"라는 뜻의‘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라는 화두를 받아 용맹정진한 끝에 2년 만에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이후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라는 화두에 막혀 5년간 다시 정진했고 결국 향곡스님으로부터 법을 인가받게 된다.
요즘도 "내가 시어머니 노릇을 해야 스님들이 본을 받는다"며 매일 새벽 2시반에 기상해 새벽 3시 예불에 참석하는 스님는 "참 나가 누구인지 하루 천만번 의심하라. 그러면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렇듯 참선에 정진하는 선승이지만 스님은 전법(傳法)에도 활발히 나서 1971년에는 해운대에 해운정사를 창건했다. 1991년에는 선학원 이사장, 중앙선원 조실을 역임하면서 선의 대중화와 생활화에 힘을 쏟았다.
스님은 동화사 조실로 추대된 후 해마다 하안거, 동안거 결제(結制)에 임하는 전국 수행자의 참선을 지도해왔다. 2002년에는 해운정사에서 국제무차선법회를 주최하면서 “생활 속에서 선수행을 연마할 때 지혜가 얻어지고 갈등이 없어진다. 진리에 눈 뜰 때 욕심이 없어지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된다”고 말했다.
올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간화선(看話禪·화두 참선법) 대법회를 개최해 큰 화제를 모았다.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 미국에서 한국불교를 설파하는 대규모 법회가 열리긴 처음이었다. 당시 스님은 뉴욕의 유서 깊은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이제 세계는 종교와 사상을 넘어 서로 마음이 통하는 시대가 됐다”며 푸른 눈의 젊은이들에게 선(禪)의 세계를 전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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