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0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15
모나코 해안도로변에 위치한 리틀스완 호텔. 그곳의 로드 뷰가 가능한 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이태리산 대리석으로 치장했다거나 금박을 입힌 마감재로 장식한 것도 아니었는데 객실료는 평상시 요금의 여덟 배에 달했고 당장 예약하지 않으면 그나마 이용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비싸긴 오지게 비싸지만 단 하루만 투숙하는 것이니… 질러봅시다.”
신희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재벌 사모님이라 해도 평상시 요금의 여덟 배에 이르는 돈을 흔쾌히 지불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거삼득의 재미를 누려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유리 양과 매니저, 한승우 실장은 꼭 그런 방에 투숙할 필요가 없지요? 그 사람들은 직접 도로변에 나가서 구경하는 걸 훨씬 좋아할지도 몰라, 안 그래요?”
“물론입니다. 원래 자동차 경주란 것이 오감을 열어놓고 관람해야 제맛이거든요? 가슴속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엔진음을 들으면서… 휘발유 타는 냄새를 직접 맡아가며 소리도 지르고… 그렇게 관람해야 제격이지요. 그 사람들 호텔은 도로 뒤편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곳으로 보내 놓겠습니다.”
둘이 투숙할 룸이 정해진 이상 나머지 요식행위는 모두 아랫것들이 알아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오로지 일거삼득의 호사를 누려볼 생각에 들뜬 신희영으로서는 과연 그 3락의 효용가치가 얼마만큼이나 될지 가늠하는 것이 생각의 전부였다.
“극치의 순간에 극치의 장면을 보는 것도 기막힌 일인데, 거기에 남이 극치를 이루는 장면까지 더불어 훔쳐보는 극치를 누릴 수 있다니… 그만하면 극치의 호사지요?”
리틀스완 호텔은 자동차를 탄 채로 호텔 룸 입구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호텔 정문에서 디지털 리모컨 한 대를 받으면 그걸로 끝! 나머지는 모두 손끝만 움직이면 해결되는 시스템이었다. 창문의 블라인드를 젖히는 일이든, 침대의 경사면을 조정하는 일이든, 룸의 조도를 맞추는 일이든… 심지어 욕실에 위치해 있는 하트형 욕조를 회전시켜 창가로 이동하는 일까지 리모컨 조정으로 가능토록 한 점이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에 흡족하게 여겨졌다.
“그러니까… 욕조에 들어앉아서도 랠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는 말이로군요. 정말 낭만적이네.”
신희영은 리모컨 단추를 이리저리 눌러보며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들 유호성을 차지하기 위해 유민 회장과 벌이던 헤게모니 쟁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이런 점이 그녀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혹은 치명적인 약점?
“그동안 너무 격조했어요. 그렇지요?”
그녀는 룸에 들어서자마자 스스럼없이 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어느새… 아니, 드디어 둘 사이가 이토록 허물없는 관계로 발전된 것이로군… 강준호는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스멀스멀 웃음이 흘러나왔다. 라제니 골프장에서 누드골프를 칠 때만 하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티를 내곤 하지 않았던가. 점잔을 떨며 몸을 외로 꼬기도 하고, 서로 간에 눈길을 피하기도 하고… 그녀의 행위가 미심쩍다고 여겨질 때마다 강준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고, 혹은 스스로 위안하며 마음을 달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는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제 스스로 옷부터 훌훌 벗어버리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님 말씀대로 불역열호!
“발랑스에서 여기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고단하실 텐데….”
“날면서 생긴 피로는 날면서 풀어야 제격이에요. 일단 홍콩까지만 보내주실래요?”
“홍콩? 좋지. 홍콩 아니라 천국까지라도!”
강준호는 얼떨결에 신희영을 따라서 욕실로 들어갔다. 특급호텔의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리틀스완의 로드 뷰 스위트룸에 딸린 욕실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이름 그대로 어린 백조가 날개를 편 형상의 욕조 위로는 여덟 명의 선녀가 날고 있었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선녀들은 각기 입에서 물을 뿜고 있었는데, 그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에는 우윳빛 거품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투명유리로 둘러싸여 있질 않은가. 툭 터진 노천! 이른바 문을 열고 나가니 곧 천국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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