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아름다운 <섬>으로 떠나는 여행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p14)

도서/섬(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꼭꼭 씹어, 아껴 읽을 그르니에 '섬'
도서/섬(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꼭꼭 씹어, 아껴 읽을 그르니에 '섬'

<섬>(민음사. 1997)에 대한 알베르 카뮈의 글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사상가,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이다. 그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기도 하다.

책은 여덟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이 사랑하던 고양이의 죽음에서 떠올리는 추억, 낯선 도시로의 여행, 어떤 백정의 병(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들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쓰여있다. 각각의 글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므로 건너뛰어 원하는 부분을 펼쳐 읽어도 좋다.

<고양이 물루>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p37)

'이놈은 한참씩이나 가장 좋은 자리를 물색하여 마땅한 곳을 정하고 나면 몸을 웅크리는 즉시 반쯤 잠이 든다. 그러는가 하면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진다. (...) 이제 그는 행복한 꿈으로 접어든다.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 앉아서 새 한 마리를 노려보는 꿈이다. 그는 새를 가까이에 붙들어두고 싶어한다. 그 새가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색깔이 산뜻해서가 아니라 통통하고 묵직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물루는 새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그의 심정이야 짐작하고도 남는다.‘ (p38)

‘조그만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매순간 그는 제 행동 속에 흠뻑 몰두해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보면 그는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접시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 그의 눈에 가득 찬 욕망은 치열하다못해 벌써 음식 위로 튀어 올라가 앉는 것만 같다. 그가 무릎 위에 몸을 옹크릴 때도 제가 가진 모든 애정을 남김없이 쏟아가며 옹크린다. 행동에 빈틈이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도리가 없다. 그의 행위는 몸놀림과 일치하고 몸놀림은 식욕과, 식욕은 그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중략)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노라면 이런 가득함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즉 그냥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p44)

<케르겔렌 군도>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단순히 살아가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환상에 속지는 않는다.' (p77-p78)

<행운의 섬>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p95)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것은 불가능한 일-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럴 경우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p97)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라고 한다. 실제 자유롭게 여행을 하기가 쉽지는 않더라도, 책을 통해서라도 여행을 하는 순간은 행복하다. 특히 이 책이 그렇다.

더불어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기가 아까워 아껴 보아도 좋을 책, 꼭꼭 씹어서 소화시켜야 하는 글들로 채워진, 가슴 뛰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번역가 김화영은 불문학자이자, 교수이며, 문학평론가이다. 특히 그는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만큼 프랑스 작품들을 잘 이해하는 번역가도 드물것이다. 해서 그가 번역한 책을 읽는 것도 행운이다.

이 책과 더불어, 김화영의 <바람을 담는 집>,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를 함께 읽어도 좋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