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바람 부는 길(1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얼떨결에 불끈하는 마음으로 추진한 대회이니 준비는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했던 수많은 팀들 중에서 불참한 팀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경주를 중도에 포기한 팀이나 탈락한 팀들까지도 이번 경기에는 출전신청을 마쳤으니 열기만큼은 대단했다.
“새카맣게 몰려들었군. 역시 돈이 좋아. 저 친구들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줄지어 서있겠어? 명예? 웃기지 말라고.”
3,000만 달러와 10년 연금이 발휘하는 효과는 대단했다. 마치 적의 군함으로 곤두박질치기 직전의 가미가제 특공대 비행기들처럼, 세계 유수의 명차들로 이루어진 자동차 대열이 머리를 산 아래로 향한 채 벼랑 위에 줄지어 서있었다.
물론 ‘게릴라 레이싱’이라는 대회 명도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 한 몫 하고 있었다. 게릴라! 이 얼마나 신선한 이름인가! 어쩌면 거성의 재벌 2세는 역발상을 통한 대회 이름으로 기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문사 기자 분들은 이리로 오세요. 방송사 카메라 기자 분들은 저쪽 지붕 위로 올라가세요. 지붕 위에 미니 프레스센터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야! 조 대리. 너는 임마, 지역유지들에게 선물부터 나눠주란 말이야!”
거성의 홍보 요원들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랠리선수를 비롯하여 언론사 기자들, 지역유지, 스키장 손님 등등 수많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니며 신비로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어찌 불과 며칠 사이에 이토록 큰 대회가 성사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했던 것이다. 인산인해! 스키장에서 세계 일류 레이서들이 자동차를 몰면서 가미가제 특공대 흉내를 낸다고 하니, 마침 끝물 스키를 즐기던 모든 사람들에겐 훌륭한 구경거리였다.
하지만 그 틈에서 유독 신희영 만은 초조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틈에 섞여있었으므로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그녀 주위에는 강준호, 매니저 백광돌, 한승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른바 강유리를 한국의 대표 급 LPGA 선수로 만들기 위한 멤버들이었다.
“도대체 어느 방송사에서 중계방송을 한답니까? 중계방송을 하려면 벌써부터 중계차가 자리 잡고 발전기를 돌립네, 조명을 합네… 오두방정을 떨 텐데 웬걸, 조용하기만 하니 어쩔 셈입니까?”
“뭘 어째요?”
“약속대로 잠시 후면… 강유리 선수가 비키니 차림으로 슬로프를 내려올 거 아닙니까? 라이브로 중계방송이 될게 뻔하다고 해서 벌인 짓인데 이걸 어쩌지요? 개망신만 당하게 생겼어요.”
“전화 할까요? 포기하라고.”
“전화기를 제게 맡기고 갔어요. 비키니에 전화기 넣을 주머니가 없잖아요. 연락조차 할 수 없으니 큰일 났네.”
신희영과 강준호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서로에게 속삭이는 중이었다. 신희영의 말을 온전히 믿고 빨간색 비키니 차림으로 어딘가에 숨어있을 강유리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스키장 전체가 긴장에 젖어 고요하게 될 즈음인 잠시 후, 이를테면 게릴라 레이싱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녀는 약속대로 알몸 위에 빨간 비키니만을 걸친 채로 슬로프를 곤두박질 쳐 내려올 것이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러니 이걸 어쩌나.
“강유리… 그 애가 신나면 가끔씩 오버하기도 하잖아요. 그 애가 달려 내려오면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도 치고 함성도 지르고 하겠죠? 만약에 그때 오버해서… 브래지어마저 벗어던지고 토플리스 차림으로 달려 내려오면 어쩌죠?”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신희영의 걱정스런 말에 강준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열기 가득한 스키장 분위기로 보아 능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지자 문득 오금부터 저려오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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