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도 나라를 구하는 일만큼 중요하지 않네.”
영화 ‘가비’(감독 장윤형)에서 고종(박희순 분)은 자신에게 매일 커피를 내려 바치는 따냐(김소연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잔 끝에서 찰랑대며 금방이라도 넘칠 듯이 가득 찬 커피처럼, 시대는 흘러내릴 듯이 위태로웠다. 그 자체가 비극이기 때문에 그 안의 모든 것이 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는 모든 이야기들을 거대 서사로 돌릴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일 뿐이었다.
따냐는 오직 그의 연인 일리치(주진모 분)와 함께 그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목표였다. 정신없이 ‘가비작전’에 휘말려 온 탓에, 구국이라는 거대한 명제는 애초에 마음 쓸 겨를도 없었다.
그것은 일리치도 마찬가지였다. ‘가비작전’을 시작하면서 그는 철저히 일본인 사카모토로 분한다. 일리치의 독기 가득한 눈 속에는 오로지 따냐를 구해하겠다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발 딛고 있는 시대는 위태로움과 괴로움을 오롯이 그들에게 전해준다. 결국 길을 잃은 그들은 역사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들은 나라를 구한 영웅도 아니고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악당도 아니다. 다만 그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가는 연인이었을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야 했던 작은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은 평화는 시대의 거대한 폭력 앞에 마음대로 조각났다.
영화 ‘가비’에서 연인의 비극과 닿아있는 시대는 단순하게 사랑이야기의 가해자로만 머물지 않는다. 스크린 앞의 관객들은 고종의 흔들리듯 위태로운 눈빛과 소통한다. 비극의 역사는 백년이 지난 2000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흔으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비극적 시대’라는 이야기의 배경은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며 영화에 힘을 더한다. 특히 따냐와 일리치의 운명과 사랑에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더한다.
영화는 다양한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영화의 중심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은 불편하고 슬픈 시대를 관통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터리 극의 흥미진진함이나 긴장감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멜로드라마로서 ‘가비’는 커피만큼 풍부한 식감을 가진 영화다. 에스프레소처럼 강렬하고 아메리카노처럼 깊고 진하며 라떼처럼 부드럽고 애잔하다. 비극의 시대를 관통한 연인의 사랑이야기가 다소 촌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클래식’은 변치 않는다.
이슈팀 기자 /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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