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일이 더 잘 될 수만 있다면, 나 하나 사퇴쯤이야...”
국회의원 하고 나면, 사실 일자리가 많지 않다. ‘스펙’이 워낙 세니까, 이런 저런 직장에서 받아주려하지 않는다. 전직 의원 스스로도 나름의 눈높이가 있으니 ‘묻지마 구직’을 하기도 좀 그렇다. 국회의원 출신자들이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실직의 공포’는 대단하다. 그런데도 불출마를 선언하는 건 인생에 있어 큰 결단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낙천 현역들이 소속 정당에 대한 비난, 차기 출마를 위한 포석 등으로 ‘불출마의 변’을 작성하는데 비해, 민주당 유원일(비례) 의원의 ‘살신성인’, 최병국-김명전 후보의 깔끔한 퇴진은 돋보인다.
▶최병국 한시 인용, “구걸 않고, 발을 씻겠다” 울산 남구갑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3선의 최병국 의원은 교육자이신 부친으로부터 어릴적부터 한학(漢學)을 익혀 검사 시절에도 대화때에나 입장을 밝힐 때 한시를 많이 인용했다. 그는 불출마를 결정한 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정치가이자 시인인 굴원의 ‘어부사’를 인용, ‘창랑수의 물이 맑으면 갓을 씻고, 창랑수의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라 (滄浪之水 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 濁兮 可以濯吾足)’는 가르침에 따라 발을 씻기로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새누리당 공천과정의 문제점을 ‘탁한 물’로 빗댄 것이다. 그는 “공천을 받지 못했을 때, 그 이유야 무엇이었던 간에, 마피아의 잣대를 탓하거나 도부수((刀斧手)에게 도생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향 울산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1999년 전별금 파동 당시 검찰을 떠날 때 수뇌부가 오랜 관행 때문에 누구도 자유로울수 없는 전별금 문제와 관련해 자기 허물을 거론하지 않은채 부하 검사들의 작은 허물만을 들춰내 옷을 벗기는 세태를 한시나 잠언을 인용해 한탄했다. 그는 당시 ‘춘추전’을 인용해 ‘맹수는 병이 깊으면 제 살을 스스로 물어 뜯어 그것이 동티 되어 죽음에 이른다’다고 했고,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하늘이 착하지 않은 자를 벌하지 않는 것은 좋은 조짐이 아니라 그 흉악함을 기르게 하여 더 큰 형벌을 주기 위한 것이다’라는 경구까지 동원해 검찰 수뇌부를 비난했다. 우아한 직설법이었다.
중수부의 고무줄수사, 제입맛대로 수사 논란속에서 존폐 논란이 일때에도 그는 한시를 동원해 후배들에게 일침을 놓았다. 최 의원은 장자에 나오는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리지 말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고 정의로운 검찰권 행사를 촉구한 바 있다. 그의 퇴진으로 여의도에서 우아한 풍자, 풍류 하나, 묵객 한명이 사라졌다.
▶김명전, 선거비용 장학기금으로 쾌척, “당과 나 모두 책임” 전남 장흥-강진-영암 선거구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떨어진 김명전 예비후보는 “3군 군민의 여망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향토사회의 균열과 좌절을 희망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의 납득할 수 없는 공천기준, 온갖 탈법과 불법으로 얼룩진 후보 경선 등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죽은 정치뿐이었다”면서 당의 문제와 자신의 부족함을 한꺼번에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김 후보는 “저 한 사람이라도 깨끗이 출마를 포기함으로써 민주 개혁 세력의 총선 승리를 위한 밀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힌뒤 선거비용으로 준비했던 1억원을 지역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 기금으로 쾌척했다. 그는 “미래 희망이 되어줄 인재들을 키우는데 작은 정성이라도 보탰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원일 “내가 야권연대 매진하면, 4대강 복원 등 내 꿈 더 잘 될 것” 야권 연대 업무에 매진하느라 공천신청 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뒤늦게 확인된 민주당 유원일 의원의 뒤늦은 정계은퇴 선언은 요즘 보기드문 ‘무욕’ 정치인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말 불출마 선언 러시를 이룰 때 미리 은퇴 선언을 했으면 더 멋진 정치적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을텐데, 그것 조차도 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는 “나도 욕심은 있었다. 18대에서 하지 못했던 4대강 복원,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론스타 게이트, BBK 진실규명, 제주 강정마을과 탈핵 등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뒤 “그러나 이를 실현하고자 야권 통합에 참여했고, 의원직을 사퇴했다”고 밝혔다. 유 의원의 이 말은 야권통합의 밀알이 되는 것이 자기 개인의 당선 보다 4대강 복원 등 숙원사업을 이루는데 더 소중하다는, ‘살신성인’의 자세였다. 그는 동료의원에게는 국회 신뢰회복을, 국민에게는 올바른 감시를 당부했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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