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을 선거구는 묘하다. 이재오(새누리당)가 좋은데, 이재오는 이명박 정부 실정에 대한 심판의 핵심 대상으로 여겨진다. 천호선(야권 단일후보)은 은평구민 55~60%가량이 선호하는 개혁진영의 후보인데, 이곳에 터잡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조금 낯설다. 그래서 여당 후보든 야권단일 후보든 흔쾌히 마음을 맡기기 쉽지 않다.

골목 경제가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않고, 자영업자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며, 이곳 교육환경은 왜 맨날 중위권 문턱을 넘지 못하는지를 생각하면 정권 심판론에 귀가 솔깃하지만, 그래도 이 후보의 힘 때문에 동네에서 몇가지 변화가 느껴져 MB가 밉다고 이 후보를 미워하기 어렵다.

아직 충분히 친해지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다가 2년전 진관동으로 이사와 정계진출의 첫 보금자리를 은평에서 틀겠다는 천 후보의 뜻이 가상하지만, 그가 말하는 ‘문화가 살아 숨쉬는 은평 리모델링’의 의미를 아직 전면적으로 동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재오(국회의원)
이재오(국회의원)

독한 사람 맵게 먹고, 순한 사람 싱겁게 먹으면 입맛대로 고르겠지만, 독한 사람인데도 순수해보이고, 유순해 보이면서도 강단이 있는 양수겸장형 두 후보가 맞붙다보니 고민이 깊다.

2010년 7.28 재선거에서 이 후보는 58대 40으로 압승했다. 하지만 이재오라는 이름이 빠진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 후보가 속한 여당은 은평구에서 43대 57로 참패했다. 여당 참패의 관성이 여전히 작용할 시점이지만, 20개월전 완승 경험을 가진 이재오가 등장해 집권세력을 향한 여론의 매서움이 약간 둔화됐다. 한편으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대변인을 역임해 정책과 소통에 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바꿔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어 인물론에선 좀 떨어져도 기대감을 준다.

대조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54)씨는 “이재오 의원의 소탈한 웃음이 떠오르다가도, 이 참에 안바꾸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요즘 상가 골목 봐라. 상인들 표정봐라”라면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이처럼 심리학적 ‘인지 부조화’ 환경속에서 지금 은평에는 명분과 실용이 교차한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한 두 개 고칠 일이 아니라면 ‘변화’라는 대의를 선택할테고, 당장 뒤처진 생활 경제 환경 몇 가지라도 바꾸려면 지역체감형 공약을 내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이 후보는 철저하게 생활밀착형 아젠다를 제시하면서 ‘MB심판론’ 차단에 나섰다. 그는 ▷6호선 지하철 복선화 ▷개방형 영어체험센터 유치 ▷재래시장 지원 ▷불광고교 신설 ▷대조동 갈현2동 노인복지센터 건립 등을 내세웠다. 그의 슬로건은 “은평 발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이다. 그는 여당이면서도 조카뻘 야당 소속 김우영 구청장에게 ‘잘 모시겠다’고 약속한 바 있고 시급한 현안이 있거든 함께 해결하자고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는 확성기 소음으로 인한 주민 피해를 줄이고 시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나홀로’ 자전거 유세를 다니다 최근 야당측으로부터 ‘쇼’라는 지적을 받자 횟수를 조금 줄였다. 여당 ‘거물’ 답지 않게 사무실이나 집 근처이 돌때엔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눈높이를 낮춘다. 이 후보 캠프는 “20년간 은평에서 생활하면서 구민들이 뭘 원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점 때문에 정권심판론은 은평을 지역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호선(정당인)
천호선(정당인)

40대 끝자락인 천 후보는 깎듯하다. 그리고 메시지가 정확하다. 그는 잘못된 국가정책 심판, 사람 중심의 따뜻한 정책이라는 두축의 메시지로 유권자들은 만난다. 지역 현안의 핵심 실마리를 풀지 못하면서 열거형으로 많은 일을 해낸 것처럼 홍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는 추상적 목표에서 구체적 사안까지 계열화하고 자신이 새로운 적임자라는 점을 인과관계로서 분명히 설명한다. ‘북한산 큰 숲, 사람의 마을 은평’이라는 김우영 구청장의 정책기조와 맥락을 맞춰 ‘사람 중심’의 은평을 만들기 위해 카드수수료율 1% 동결, 대규모 점포 개설 허가제로 변경 등 상인보호를 위한 거시적 틀을 만들겠다는 계획과 시민문화공간 조성,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다양화, 뉴타운과 삼송 신도시를 잇는 교통문제 해결 등 당면과제를 제시했다. 정책목표인 ‘문화특구 은평’은 문화산업이라는 신규 시장 개척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천 캠프측은 설명한다.

29일 현재 객관적인 조건은 이후보가 약간 앞선 듯 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 파워에서는 천 후보가 리트윗 빈도 3배 등 훨씬 강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0.7%포인트차 박빙에서 14.9%포인트 차 이 후보 우세(부동표 36.7%)까지 다양하지만, 4~5%포인트 차 이 후보 박빙우세로 나타난 여론조사가 더 많다. SNS가 잠재력 있는 ‘숨은 표’ 기능을 한다면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접전 양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은평을은 경기도와 시 경계를 나누는 변두리 지역으로 지역공동체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일정한 아젠다에 주민이 동의할 경우 표 쏠림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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