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자퇴후 뮤지컬 배우 모집 광고보고 무작정 단원으로 입단…부족한 춤실력 여대 담장 4년 넘어가며 배웠죠
‘오페라의 유령’에 110억 들여 200억 매출 대박…뒷동산서 보다가 히말라야에 올라서 뮤지컬 시장 본 느낌
6년전 갑자기 찾아온 하체마비 증상…독서·걷기로 몸과 마음 치유 그때 느리게 사는 법 깨달아
뮤지컬 등 공연계 펀드 조성·재능있는 창작자 등 인적 인프라 키워야…K-팝처럼 해외시장 개척에도 한몫 하고파
[헤럴드경제=황유진 기자]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당시 KBS가 자리잡고 있던 서울 남산동에 살며 문화ㆍ예술계 인사들의 활동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영향으로 숭실고등학교에 입학 후 합창반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내내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등을 누비며 수많은 오페라 작품을 관람했다. 연주회를 보기 위해 당시 대학로에 있던 서울대 음악대학 문턱도 수시로 넘나들었다. 수많은 공연을 관람하며 유복한 성장기를 보냈다.
일본에서 태어나 19살에 한국에 들어온 어머니는 가정에 충실한 전형적인 현모양처였고 부부 간 금실도 각별했다. 당시 춤 선생님을 집으로 초빙해 아함께 사교댄스를 배우고, 오토바이도 나란히 즐길 만큼 인생을 신나게 사는 분들이셨다. 가구와 토목 등 부친의 사업이 잘나가 가족 모두 남부럽지 않게 넉넉한 생활을 했다.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와 함께 호흡해온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의 인생 1막은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의 인생 2막은 달랐다. 모든 것이 변했다. 80년대 초, 난데없이 부친의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노른자위 땅에 있던 빌딩도 한순간에 날아갔다. 자칫 탈선하거나 술에 빠져들기 쉬운 때였다. 그때 그를 구해준 게 ‘무대’였다. 서울 논현동 설앤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설 대표는 가진 건 없었지만 연기에 미쳐 지낸 시절을 행복하게 회고했다.
▶1억원짜리 피아노 위에서 자고, 여대 담 넘으며 연기, 춤에 미쳐 지냈던 것이 타락인생 막아줘… “학교 강당에 스타인웨인 피아노 한 대가 있었어요. 연주하는 사람이 드물어 먼지가 쌓여있곤 했는데 그 피아노를 침대 삼아 잠을 잤어요. 스스로 ‘난 1억원짜리 침대에서 잔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설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영남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당시 그는 학교 연극반(천마극단) 활동에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다. 학교 강당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연극 연습을 했고 지칠 때마다 그곳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학교는 그에게 육신과 영혼의 집이었다. 3학년 때 대학교를 자퇴했지만 연극반 동창회엔 빠지지 않았다. 가진 건 없어도 열정이 넘쳤던 때 함께 무대 위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선ㆍ후배들과의 끈끈한 관계는 힘이 됐다.
“학교 자퇴 후 극단 현대극장에서 뮤지컬 배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응모해 현대극장 단원이 됐어요. 그때가 24살 때였죠. 단역을 거치다가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그린 작품 ‘빠담 빠담 빠담’에서 이브몽탕 역을 맡게 됐는데 ‘하늘’ 같았던 윤복희 선생님(피아프 역)의 상대역이었죠. 열심히 했더니 기회가 주어지더라고요.”
그의 인생에 또 다른 변화를 준 것이 무용이다. 노래나 연기에 비해 부족했던 것이 ‘춤’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한국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교수를 만나면서 사사할 기회를 얻었다.
“이화여대 담을 4년간 넘었어요. 사람들이 대학 어디 졸업했냐고 물으면 이화여대 졸업했다고 농담할 정도는 되죠. 당시 이화여대에 재직 중이셨던 육 교수님이 남자 무용수를 키워야겠다 하시던 순간, 운좋게 제가 그 기회를 잡았던 거고요. 여대에 남자는 출입금지였기 때문에 새벽에 담을 넘어가 배우고 연습하고, 그러다가 수위 아저씨한테 걸리면 교수님께서 적어주신 확인증을 보여주며 위기를 넘겼죠.”
그는 무용에 완전히 빠졌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거울 앞에서 춤을 추고 또 췄다. 노래, 춤, 연기에 흠뻑 빠져 지내다 보니 실력도 인정받았고 배우로서 승승장구했다. 현대극장에서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주인공을 맡은 후에 극단 민중으로 스카우트돼 ‘선인장 꽃’ ‘나비처럼 자유롭게’ 등의 작품에 잇달아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요즘 아이돌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공연 끝나면 팬들이 선물 주고 가고 그랬다니까요, 하하.”
무대 위에선 주인공으로 더할 나위 없이 화려했지만 6년간 출연료를 다 합쳐도 2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안무를 담당했던 한익평 선생님이 절 불러주셨어요. 그 후론 KBS 상임 안무가로 지내면서 생활도 안정되고,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피날레 안무까지 맡게 됐죠. 국가의 큰 행사에 안무가로 이름을 올리면서 안무가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그 후 10년간 뮤지컬, 방송 안무, CF 안무까지 거의 제가 독식하다시피 했어요. 돈도 벌만큼 벌었죠.”
▶집 팔아 제작한 뮤지컬, 3억원 날리고 완전 망해. 제작 배워야겠다 생각에 밥 먹듯 해외 다녀… “1992년 봄 무렵이었어요. KBS홀 개관기념으로 프랑스 뮤지컬 ‘재즈’를 제작했지요. 그때 제가 집을 팔아서 총 3억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티켓 수입으로 1500만원 정도 돌아온 게 전부였어요. 밥값 겨우 건진 거죠. 뮤지컬 배우로서 뮤지컬을 좋아해 제작에 뛰어들었는데 그 열정만으론 안 되더라고요. 제작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걸 수업료 3억원을 내면서 배운 거죠.”
그는 1995년에 삼성영상사업단이 설립한 공연제작사(T&S)의 대표이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제작에 나섰다. 설 대표는 선진 뮤지컬 제작 환경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밀리언 마일리지가 된 지는 벌써 오래다.
“외국과 합작했던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경우엔, 국내 뮤지컬 제작 노하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계기를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요. 해외 스태프들을 초빙해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때 선진 기법을 많이 전수받은 셈이죠. 삼성영상사업단이 발족할 무렵만 해도 뮤지컬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어요. 산업이란 인식도 없었고, 라이선스나 로열티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던 시절이었거든요.”
브로드웨이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며 그는 확신을 가졌다. 국내에도 뮤지컬이 산업으로 각광받을 거란 판단이었다. 거기서 탄생한 게 뮤지컬의 역사를 바꿔놓은 ‘오페라의 유령’이다.
이젠 뭔가 좀 해볼 만하다 싶을 때, 또 한 차례 위기가 닥쳤다. 그가 대표이사로 있던 T&S가 부도가 난 것. 삼성영상사업단의 자본력을 믿고 사업을 벌였는데, IMF까지 덮쳐 회생 불가 상태가 됐다. 저금 통장에 단돈 500원이 들어있었던 적도 있었을 만큼 부도 여파는 컸다. ‘재즈’가 망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시련이 그의 앞에 닥쳤다.
▶‘Give(주다)’를 ‘기부’로 생각하고 살다보니 위기의 순간에 결국 날 살린 건 사람… “요즘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인간관계의 기본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계산하지 않아요. 사람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지도 않고요. ‘누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했을 때 제가 어떤 측면에서 도와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도울 수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도와줘요. 제가 사심없이 도왔던 사람들이 결국 제가 힘들 때 절 돕는 아군으로 남더라고요.”
그는 언젠가 구룡사 정우 스님과 만났을 때 스님이 한 말을 잊지 못하겠다고 했다.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인도의 거지는 ‘나는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다. 역할 기부를 하는 거다. 천국행 티켓 한 장을 얻을 기회를 주는 거다’ 이런 마인드로 동냥을 한다고요. 그 말씀을 듣고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죠.”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때도 미리 재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받을 때도 일을 성공시켜 배로 갚겠다는 자신감 있는 마음으로 도움을 받는다. T&S가 부도난 이후 110억원의 투자금을 모아 ‘오페라의 유령’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것도 큰돈을 선뜻 내준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 전엔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최고 제작비(28억원) 기록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에 110억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겠다고 하니 대부분이 엄청난 손실을 입을 거라고 우려하더라고요. 그런데 200억원 매출을 올렸으니 우리나라 뮤지컬시장에서 큰 획을 그은 작품이 됐어요. 뒷동산에서 보다가 갑자기 히말라야에 올라서 뮤지컬시장을 조망하는 느낌처럼 그때 시장을 보는 눈이 넓어진 거죠.”
설 대표에게 ‘오페라의 유령’은 단순히 제작비나 매출 면에서만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니다.
“ ‘오페라의 유령’을 하면서 브로드웨이 제작 시스템을 낱낱이 알게 됐어요. 지금 뮤지컬시장에서 표준화된 계약서도 그때 시작된 거죠. 무대 시스템, 컴퍼니 시스템 등 오페라의 유령에서 비롯된 게 많아요. 단순히 뮤지컬시장 파이를 키운 게 아니라 뮤지컬 산업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태풍 ‘매미’에 부산 공연장 날아가 …원인 모를 하체마비 겪으면서 무대에 올렸던 잊지 못할 작품들…
설 대표가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작품이 빅탑(텐트극장)에서 공연한 ‘캣츠’다. 지방 순회공연 등을 통해 우리나라 지방 뮤지컬시장이 커진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한국시장도 너무 작은데, 작품 무대를 서울로 한정하면 시장이 더 작아지죠. 내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는데 극장 대관이 어디 쉽나요? 그래서 이동식 극장인 빅탑을 도입했죠.”
하지만 그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2003년 9월 12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 광장에서 공연 중 태풍 ‘매미’가 공연장을 강타하면서 하루 아침에 무대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엔 정말 망연자실했어요.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지방 공연은 최대 5일, 8회 공연이 대부분이었는데 빅탑 ‘캣츠’를 공연하면서 대구에서 4주, 부산, 광주, 대전에서 2주까지 장기 공연이 가능해졌죠. 지방 뮤지컬시장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구 뮤지컬 페스티벌’이 지금처럼 자리잡는 데도 영향을 끼쳤고요.”
2005년 무대에 오른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도 그에겐 잊지 못할 작품이다. 객석 점유율 203%를 기록하면서 한 작품이 단기간 큰 매출을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했는데 공공극장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 됐어요. 보람이 컸죠.”
그는 당시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2박4일 해외 출장을 밥 먹듯 다니며 전력투구했다. 온 힘을 쏟은 만큼 그가 무대에 올린 작품들의 성과도 좋았지만 대신 그는 건강을 잃었다. 2006년 5월께 원인을 알 수 없는 하체마비 증상을 겪게 된 것.
“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공포심이 들었어요. 외출은 불가능했고 가벼운 걷기와 독서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나름대로 2개월을 보낸 후에 마비증상에서 회복됐죠. 그때 느리게 사는 법에 대해 배웠어요.”
▶뮤지컬 펀드 조성ㆍ재능 있는 창작자 육성ㆍ해외 시장 빨리 눈 돌릴 때…
“경제 규모 1조원, 뮤지컬시장 규모 3000억~4000억원 시대에는 해외 시장에 빨리 눈을 돌려야 해요. 해외 직접 투자를 할 수도 있고, 우리가 로열티 수혜자가 될 수도 있겠죠. 세계적인 프로듀서와 코워크(co-work)도 필요하고요. K-팝(POP)도 그렇게 하잖아요? ”
설 대표는 이를 위해 인적 인프라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뮤지컬이 K-팝처럼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주도하는 지원이나 시스템 구축이 적극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문화상품인 경우에는 부가가치세(VAT)를 차등화해서 적용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순수예술은 아예 면세를 해줘야 하고, 상업 예술도 문화상품인 경우엔 세금을 감세하는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어요. 또 엔젤 , 매칭 펀드 등 공연계의 금융 기법도 더 선진화돼야 하고요.”
그는 상업성을 추구한다는 세간의 오해 섞인 시선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설앤컴퍼니는 업계에서 가장 기업적으로 뮤지컬에 접근하는 회사라는 것. “상업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뮤지컬은 음악이 먼저고 그다음에 스토리가 있는 장르죠. 4대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사이공’ ‘레미제라블’의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요새 드라마로 치면 다 막장 드라마예요. 상업예술인 뮤지컬 작품에서 어떤 사상이나 철학적 메시지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 대표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특성을 잘 구분해 육성하고 서로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뮤지컬시장에도 똑똑한 후배들이 많습니다. 저는 뮤지컬시장의 큰 판을 짜는 데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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