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4.11 총선을 열흘 가량 앞둔 시점에 민주당 고위직 A씨는 “갖가지 변수가 어디로 튈지 몰라, 총선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민주당이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능력 정도만 갖추되, 새누리당보다 의석이 적은 게 대선 승리를 위해 좋다”는 역설을 내놓았다.

그의 역설은 지난 20년간 우리 정치사에서 보여진 서너 차례 총선-대선의 엇갈린 결과를 염두에 둔 발언일까? 그간 건국이후 최초 여소야대가 됐던 1992년 총선 8개월 후 대선에서 여당후보 김영삼이 당선됐고,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이겼지만, 이듬해 대선에선 야당후보 김대중이 대권을 잡았다. 2000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예상외 승리를 거뒀지만 한ㆍ일 월드컵축구대회와 효순ㆍ미선양 추모 촛불집회가 열리던 200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노무현후보가 당선됐고, 2004년 총선에서 참패했던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MB를 앞세워 승리한다.

▶“져야 좋다”...역대 총선-대선 엇갈린 결과 때문? A씨가 총선-대선 엇갈린 승부의 전례를 갖고 “지는게 낫다”고 하기엔 위험성이 따른다. 1992년 두 석이 모자라 여소야대를 허용했던 민자당은 곧바로 무소속 영입에 나서 어렵지 않게 과반수를 획득한뒤엔 그해 12월 정국주도권을 놓지 않으면서 YS 당선을 성공시켰다. 총선 직후 의회권력을 유리하게 재편한 이후 대선까지는 ‘관성’이 작용했던 게 1992년 정국이다.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열리는 때에는 의석수가 적은 당이 대통령을 배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A씨는 왜 총선에서 약간 지는 게 좋은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안철수(교수, 기업인)
안철수(교수, 기업인)

“민주당이 근소하게 지게 되면, 중도와 개혁세력들 사이에, ‘거 봐, 안철수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지잖아’라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재보선때 열세에 놓였던 박원순이 막판 안철수가 선거사무실 한번 가서 편지 전해준 것 만으로 어렵지 않게 역전에 성공할 때 안철수의 위력을 보지 않았느냐. 총선후 안철수가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선언만 하면, 대선 필승 흥행카드인 안철수-문재인 경선잔치가 5년전 이명박-박근혜 경선 흥행을 뛰어넘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결국 야권이 대선정국의 주도권을 끝까지 쥐게 된다.” ▶“총선 野 이겼더라면, 안철수 없을 뻔” 그는 이어 “여당이 4.11 총선에서 이기면 박근혜 대세론이 굳혀지고, 당내 대항마가 없어지면서 새누리당 대권경쟁은 싱거운 게임이 된다. 박근혜는 이제 상승할 일은 별로 없고, 이런 저런 변수로 인해 지지율이 정체되거나 떨어질 일만 남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져야한다’는 A씨의 진단이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안철수 때문이었던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올해 대선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16일 나왔다. 안 원장은 야권 중진의원과 만나 “기존 정치세력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상황을 만들어 낼 각오가 돼 있다. 새로운 정치실험에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실망을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는 대선 캠프격인 ‘포럼’을 출범시키고 이미 영입작업을 진행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안 원장은 장외에서 뜻있는 정치권 안팎의 인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그가 탈이념을 언급했기 때문에 영입대상은 야당은 물론 여당도 포함될 전망이다. 가상의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도가 기존정당의 2배 안팎으로 압도적이라는 점도 그가 정치참여 방법상 여러 옵션(야당입당, 야당기반 정계개편 등)을 내놓기 보다는 ‘장외 블랙홀’을 선택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제3지대는 가시밭 하지만 이 방법은 전례에 비춰 녹록치 않다. 신진 정치인의 돌풍이 기존 주류세력들을 끌어들인 대표적인 사례였던 노무현도 ‘꼬마민주당’ 등 소수파에 머무른 기간이 길기는 했지만, 기존 공당에 소속돼 있었다. 2007년 정치권 밖 ‘제3지대론’이 대두됐을 때, 손학규, 고건, 정운찬 등은 손님을 끌어모으지 못했다. 이 중 손학규는 민주당에 입당했다.

1992년 대선을 수개월 앞둔 시점만 해도 지지율 1위였던 무소속의 박찬종도 결국 세력규합에 실패하면서 대선에서 6% 득표로 추락했고, 대선후 신정당을 만들었지만,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서 군소정당에 머무르다 국민당과 합당하고 말았다. 역대 제3지대 실패이유는 기존 정치인들의 기득권때문이었다.

2007년 제3지대론은 야권의 위기론속에서 추진됐지만, 지금은 야당이 어느정도 힘을 갖는 상황이기 때문에, 야당의 기득권 포기 의지가 5년전보다 더 미약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야당이 ‘오픈 프라이머리’의 흥행을 위해 창조한국당에 김영춘을 보낸 것처럼 현역 의원 몇 명을 안철수 신당에 ‘파견형 입당’시킬 가능성은 있지만, 창조한국당 분열과정을 지켜보면 이 역시 좋은 방법은 아니다.

이 때문에 안철수의 ‘장외 포럼’은 매우 정교해야 한다. 정치이력이 없지만 국민적 신망을 받는 인사와 사심은 없지만 전략에 뛰어난 전직 정치분석가로 인적 기반을 갖춘 뒤엔 김성식, 김영춘 등 아깝게 총선에서 탈락한 ‘뜻있는 정치인’들을 추춧돌 위에 놓고 지속적인 신정치 이벤트를 통해 여야 정치인들을 끌어와야 한다.

▶“콘텐츠 없다” 비판부터 차단...어차피 닥칠 장마, 대놓고 나서라 몇 달이 지나도 영입 인원이 일정수준을 넘지 못하면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고, 한꺼번에 민주당,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너무 많이 영입되어도 ‘도로 민주당’소리를 들을 우려가 있다. 급한 마음에 이 당, 저 당에서 마구 끌어다 놓으면 알력싸움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잡음이 날 수도 있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콘텐츠가 없다”, “아마추어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문가적 식견이 있는 명망가들이 캠프에 모이는 것은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아울러 한 배에 탄 뒤에야 영입된 인사의 과거의 문제나 부도덕성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검증시스템도 갖추어야 한다.

할 일이 태산같은 안철수이다. 정치적 역량의 크기가 대선승리로 ‘관성’처럼 이어질 가능성이 큰 올해이다. 웬만큼 준비해놓고 ‘짠’하고 나타나야겠다는 생각에 ‘신중’을 기하기엔, 시간이 없다. 먹구름을 줄이고 장마를 피하려 하지 말고, 어떤 날은 해 뜨고 어떤날은 비 오는 점을 인정하고 대놓고 나서서 허드렛일부터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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