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4회> 붉은 길, 푸르른 마음 2
참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높은 양반 보기를 오뉴월 개구리 보듯 하던 재벌 2세가 불현듯 자세를 바로잡고, 등을 바짝 곧추세워 앉은 모습이 참으로 이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번쩍 들어 천장을 가리키는 그 양반의 손가락, 혹은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오는 그의 매서운 눈초리만 본다면, 바짝 졸아 있는 재벌 2세의 모습이 지극히 정상적으로도 느껴지더라는 말이다.
“남과… 북의 독특한… 상황 말씀이지요?”
“그렇소. 거성에서 비밀리에 추진해온 일이야말로 가뜩이나 호전적인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판단입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비밀리에 그런 일을 추진한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그게… 그러니까….”
재벌 2세는 어물어물, 대답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뉴월 개구리와 다름없던 그 양반이 어찌 이리도 매섭게만 느껴질까? 권력자에게서 느껴지는 포스? 아우라? 뭘까? 이 묵직한 느낌은.
“거성에서 가장 뛰어난 블루드라이브 기술자였던 제임스 리 박사가 불온한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정보를 얼마 전에 입수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기막힌 일은, 제임스 리 박사와 거성의 임원이 엊그제 접촉을 가졌다는 사실이지요. 당신이 지시한 일입니까? 이 사실을 부친이신 왕 회장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우리 임원이 그런 일을 했어요?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아버님이나 저는 그런 첨예한 사항을 지시한 적도 없습니다. 그 임원이 도대체 누굴까요?”
“정말 모르시는 일입니까?”
“제가 감히 상감마마 면전에서… 어찌 거짓말을….”
사람이 겁을 먹으면 이렇게 될까? 높은 양반의 매서운 눈초리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재벌 2세의 입에서는 급기야 ‘상감마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던 것인데…. 하긴 잠시 전에 근엄한 모습으로 천장을 가리키던 그 양반의 손끝에서는 강력하고도 신비한 자기장이 퍼져 나오던 것 같기도 했다. 그 손끝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무엇이 나올까? 그야 뻔할 뻔자, 권력의 최상부… 곧 상감마마 아니겠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상감마마라니요?”
“아니 선생님이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웃지 못할 희극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하여간 누가 상감이건 간에 서로가 대충 얼버무린 상태에서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거성에 권도일이라는 전무가 있습니까?”
아뿔싸! 결국 권도일 전무가 사고를 친 모양이로군…. 재벌 2세는 대답과 동시에 질끈 두 눈을 감았다. 한껏 노려보는 높은 양반의 눈초리를 차마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그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묻는 포도대장 앞에 바짝 엎드린 죄인의 꼴이 된 셈이었다.
“네, 있습니다. 며칠 전에 끝난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드라이버로 뛰었지요. 생산된 지 30년이 넘은 머신으로 상위권에 입상한 대단한 선수입니다.”
“전무? 고위 임원이 랠리에 출전한 드라이버라고요?”
일단 헤게모니를 움켜쥔 쪽은 높은 양반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갑과 을’의 단순한 대화방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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