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올 대선 날 한국에 있는 총수들은 하나도 없겠구먼.”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11일 대선 출마 선언,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10일 취임 한달 특별회견을 지켜본 재계 고위 임원의 말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 특히 총수들이 코너에 몰리는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그룹 총수들이 사상 유례없는 최대의 수난시대를 맞았다. 강도는 약간 다르지만 여야 따로없이 재벌개혁을 표방하고 나서면서 ‘공정’과 ‘수술’ 타깃은 대기업, 특히 총수들로 향하고 있다.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그동안 총수들을 향한 조준이 ‘소리없는 움직임’이었다면 유력 대선주자의 출사표를 계기로 ‘경고 사격음’이 울린 것은 사실이다.
총수들이 곤혹스러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기업이 범죄집단으로 내몰리고, 개혁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총수들도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여소야대’ 국회 환노위로 인해 언제라도 줄소환을 당할 처지다.
이에 국내 정치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 총수들이 해외로 장기간 출장 가는 것은 예고된 수순으로 보인다.
총수들의 해외출장은 경영상 바람직한 일이지만, 단순히 피곤증에 의해 해외행을 하는 것은 글로벌경제위기 앞에 긴박한 경영을 펼쳐야 할 기업으로선 좋지 않은 일이다. 잘못하면 투자위축과 일자리 위축 등의 부작용도 나올 수 있다.
이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논쟁도 뒤따른다. 황금알을 낳은 거위 배를 째(재벌해체) 그동안 과실을 나눠먹는 게 옳은 일인가, 엄정히 관리하되 계속 알을 낳게는(새 재벌정책) 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민주당의 재벌해체론과 새누리당의 신(新)재벌정책과 맞물린 논쟁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재벌해체든 재벌개혁이든 그동안 대기업 또는 오너가 해온 공적은 깡그리 무시하고 ‘대수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사회적 합의에 의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논쟁의 결과가 어찌되든, 총수를 향한 ‘활시위’는 팽팽하고, 곧 과녁으로 쏘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하반기 총수들의 공백상태는 예정돼 있다.
물론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총수들이 몸을 피할게 아니라 자성을 통해 적극적 경영에 매진해야 한다는 시각도 뒤따른다. 0.5~1.0% 지분으로 그룹에 절대적인 지배력을 과시하는 총수나 공정경쟁 이름을 해치고 ‘독식’에만 몰두하는 오너들이 경제민주화 빌미를 제공했기에 이참에 철저한 반성을 통해 정치권에 발목잡히는 일을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대선의 해, 총수들의 해외행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2007년 대선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2002년 대선에선 대부분 총수들은 해외에서 대선 결과를 지켜봤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그해 11월 글로벌경영 구상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해 선거가 끝난뒤 돌아왔고, 구본무 LG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해외에서 상당기간을 보냈다. 전두환ㆍ노태우정권을 탄생시킨 앞선 대선에선 더 심했다. 많은 기업인들이 정치자금 압박을 피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용은 사뭇 다르지만, 경제민주화가 대선에서 불붙고 그 정중앙에 총수들이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오너의 ‘해외 장기체류’는 예년보다 더 뚜렷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10대그룹 임원은 “골목상권 자제, 협력업체와의 상생 등 대기업도 반성을 통한 새로운 시대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이런 시점에서 재벌해체 등 자극적인 단어와 포퓰리즘 활용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기업이 좀더 변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ys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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