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6회> 모든 길은 하나로! (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이른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의 호텔에서 처음으로 밤을 맞이하게 된 권도일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무려 열 대 여섯 군데의 호텔에 대한 브리핑을 지루하도록 듣고 난 후에야 겨우 배정받은 곳이 평양직할시 오탄동에 있는 평양호텔이었다.

“버드나무의 도시, 평양의 별명을 딴 류경호텔이 문을 열었다면 거기에 권도일 선생을 모셨어야 마땅하오. 땅속으로 4층, 땅 위로 101층으로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고 훌륭한 호텔이지만 아깝게도 아직 내부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았단 말입네다. 그러니 어쩌갔소? 이번엔 양각도 국제 호텔로 가 봅세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당번을 바꾸어 끌고 다니면서 호텔마다 브리핑을 해대는 통에 권도일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류경호텔에서 남쪽으로 4Km나 달려 내려가더니 프랑스식으로 지었다는 양각도 국제 호텔을 보여주면서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다.

보통강 구역을 돌고 돌아 양강 호텔, 보통강 호텔, 모란봉 호텔, 봉화산 호텔, 서 평양 호텔을 돌고나니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호텔에 당도할 때마다 선전원이 득달같이 달려 나와 브리핑을 해대긴 매한가지.

“아무 곳에서나 재워주면 됩니다. 저는 그저… 서울에 계신 거성그룹 회장님과 통화만 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고요.”

“민족의 영웅을 그렇게 함부로 재워드릴 수는 없습네다. 전부 돌아보시고 좋은 곳으로 선택해 주셔야만 합네다.”

“글쎄 아무 곳이나…”

“어림도 없습네다.”

그런 식으로 돌고 돌아 만경리 구역으로 들어서더니 량강 호텔, 서산 호텔을 거쳐 광복거리에 현대식 30층 건물로 새로 지은 청년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브리핑은 쉬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속칭 뺑뺑이를 돌고 나서야 그는 평양호텔의 허름한 발코니에 앉아 재벌 2세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고생하시는 군요. 북 측의 만찬은 어떠셨습니까?”

겨우 연결된 통화였으나 권도일은 시무룩할 뿐이었다.

“콩나물 국, 고등어구이, 파래 김, 고구마튀김, 물김치, 돼지고기 볶음, 그리고 녹색 병에 담긴 대동강 맥주 한 병이 고작이더군요. 하긴 그 정도면 됐지요.”

“어디에서 묵고 계십니까? 엠페러 오락호텔? 아니면 고려호텔? 향산 호텔?”

“2세 께서 어찌 북한의 호텔이름을 그리 잘 알고 계십니까? 왠지 몰라도… 하루 종일 그 많은 호텔들을 뱅뱅 돌기만 했습니다. 지금 묵는 곳은 지은 지 가장 오래 된 평양호텔입니다. 구식 건물이지요. 머릿돌을 보니 1961년에 지은 호텔이더군요.”

“아! 그러셨군요.”

“나에게 일삼아 호텔을 구경시킨 까닭이 궁금합니다.”

권도일은 발코니 오른편 아래쪽으로 펼쳐진 대동강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북한 산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도라지 향이 나는 권련이었다.

“장차 5개국 관통 랠리경주 때, 권 전무께서 관람한 그 호텔들을 모두 보여줄 수 있도록 길을 깔아달라는 무언의 요구입니다. 중계방송의 배경화면으로 평양의 발전상을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아! 그 속셈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군요.”

권도일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호텔들이야말로 어찌 보면 북한을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신개념의 세트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