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9회> 모든 길은 하나로! (1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자고로 미인계의 가치는 수 천 년 동안 변치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중이었다. 적어도 지금 북한 미녀 예원희 앞에서 무작정 주눅이 들어가는 권도일의 꼬락서니와 이제부터 슬슬 낚싯대를 당기기 시작하는 도형철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예원희 씨를 정식으로 저에게 소개해주시는 겁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오, 권도일 선생. 모습을 보자마자 두 사람 호상 간에 마음에 척 들어 하니 보기 좋습네다. 권도일 선생도 총각이라 하지 않았소? 처녀 총각이 만나는 것이 뭐가 문제갔소?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 하지 않습네까?”

“그렇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권도일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예원희를 정식으로 소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체면 따위를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미인계의 위력이 그토록 엄청났다고나 할까?

“자! 빠에 오셨으니 맥주라도 드셔야갔지요? 대동강 맥주? 봉학 맥주? 아니면 시원하게 까스맥주로 하실랍네까?”

“까스맥주요?”

“도 프로님, 남쪽에서는 까스맥주를 생맥주라고 부른답니다.”

“아! 기래?”

“까스맥주 보다야 고전적이고 깊은 맛이 풍부한 봉학 맥주가 어떻겠습니까?”

예원희가 조근조근 설명하고 거들더니, 봉학 맥주 세 병을 주문했다. 어쩜 그녀의 말투는 서울에서 중산층 보통사람이 쓰는 표준발음 그대로였다.

“하긴 까스맥주는 관동의 명소 삼일포에 쪽배라도 한 채 띄워놓고 마셔야 제격이지. 빠에서 마시기에는 역시 봉학이 좋갔지. 어쨌거나 맥주 맛이 남쪽보다 훨씬 뛰어날 텐데 뭐가 문제갔소?”

권도일이 예원희에게 반한 기색이 역력하자 정작 들뜬 사람은 도형철이었다. 사실 골프실력 하나로 당 간부서열 33위에 까지 오른 그는 자신을 성공한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다. 공산당 상위 간부로서 평양주재 외국인들과 상대하며 골프로 나날을 보내는 그는 더 이상 부러워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권도일 선생을 보자고 한 이유가 있소. 곧 카자흐스탄으로 파견되어서 경주운전 교육을 받기로 되어있는 내 쫄병이 있었는데…”

그는 봉학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 나더니 드디어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서열 33위, 그 동무가 37위… 까마득하던 그 동무가 엊그제 32위로 올라섰단 말입네다. 내 어깨를 밟고 올라섰으니 속이 타지요. 경주 자동차 운전수인 그 동무가 당 간부들에게 농간을 부렸다~ 이거외다.”

보리함량 12%를 자랑하는 봉학 맥주가 황금빛으로 잔에 채워지는가 싶더니 금세 거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품질을 높였다는 그 맥주의 맛과 향기가 제법 좋게 느껴지는가 싶었다.

“체육오락의 흐름이… 꼴푸에서 자동차 경주로 바뀌기 때문이라는 거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잖소? 그런데 그게 말처럼 되니 내가 미치겠다 이 말이오. 권도일 선생이 오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이외다.”

그때, 이게 웬 일인가? 다소곳이 앉아있던 예원희가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권도일의 팔뚝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작업을 거는 과정임에 분명했다. 동토의 땅, 북한에서 빠에 들러 맥주를 마시는 것도 기막힌 일인데… 어여쁜 여인이 작업을 걸어오다니!

“남쪽, 거성그룹에 도종호라는 전략담당 상무가 있지 않소?”

바로 그 순간, 그 미묘한 순간에… 도형철이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