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 폐허에서 관광명소로…‘상상력 발전소’ 강우현 그가 걸어온 길

#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빠 나 디자인하면 안 될까?”

“안 돼.”

“왜?”

“넌 나만큼 못하니까.”

‘무슨 아빠가 이래?’ 싶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 아들이 군대에 갔다.

“너 심심하지? 쭈그리고 앉아 땅바닥만 쳐다보지 말고 거기에 돌멩이를 한 줄로 놔 봐. 그리고 그걸 연결해 봐. 숫자를 써보든, 엄마 얼굴을 그려보든.”

아빠의 ‘편지 과외’가 시작됐다.

아들은 아빠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땅바닥에, 종이에 돼지도 그리고 말도 그렸다. 뭐가 돼가는 게 신기했다. 점점 손놀림이 빨라지고 캐릭터쯤은 간단하게 그릴 줄 알게 됐다.

남이섬 대표 강우현(60) 부자의 얘기다. 14만평 남이섬을 통 크게 디자인해가고 있는 강 대표는 꿈의 길은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고 여긴다. 저마다 걸어내야 하는 그 길 끝이 막다름일지라도 거기에 또 다른 문이 있다고 그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강우현의 길’을 내왔다.

“꿈? 난 뭐가 되겠다 하는 거 없었어요. 지금도 없어요. 지금 할 수 있는 걸 지금 하면 돼요. 가다가 부딪히면 거기서 다시 시작하면 되죠. 사람들은 꿈을 고정시키는데, 고정시키면 피곤해요. 창조적인 사람들은 매일 바뀌어야죠.”

사람들은 변화를 내심 두려워하지만 그는 늘 변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변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하다.

그는 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뭘 하는 쪽이다. 손은 늘 머리보다 먼저 나간다. 국립극장 CI, 서울랜드 캐릭터, 서울 정도 600년 로고를 그린 디자이너, 그림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캐릭터디자이너, 소셜디자이너, 아시아문화교류연구소장, 좋은아버지모임 창립자, 잡지발행인, 세계책나라축제 조직위원장 등 무수한 직함은 그가 그저 좋아서 하다 보니 뒤에 따라붙은 것이다.

그의 작업실, 상상의 공간은 식당과 카페 지하에 있다. 남이섬과 육지를 날아서 오가는 데 쓰이는 짚 와이어 헌 것을 주렁주렁 매단 3개의 문을 통과하다 보면 조금씩 바깥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다. 흙과 돌로 아무렇게나 빚은 벽, 버려진 나무 패널로 만든 선반과 사면을 가득 채운 책, 흙 인형들, 수십자루의 붓, 불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꽃잎처럼 벌어진 커다란 도자기, 돌과 나무…. 본래의 쓰임새를 다하거나 못 미치어 내다버렸음 직한 것들이지만 묘하게도 그 속에선 마치 제자리인 양 편안하고 멋마저 풍긴다. 저마다 제 빛깔로 돋보일 뿐 아니라 주위 사물과도 제짝처럼 잘 어울린다. 그 방의 주인인 그는 온갖 잡동사니를 잘 부리고, 그들은 비로소 새로운 쓰임새로 반짝였다. 그곳에서 그의 꿈과 사물의 꿈은 조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꿈을 묻자, 그는 말 대신 손을 움직였다. 물그릇과 먹ㆍ붓ㆍ한지 등이 놓여 있는 책상 위에서 그의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쓰고 그리고 붙이고, 1분이면 족했다. 누군가의 1분은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시간이다. 말이 나오기 전에 먼저 손이 움직이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은 그림을 완성했다. 도깨비방망이가 따로 없다. 소원을 말하면 뚝딱! 소망의 족자가 만들어지고, 사랑의 부채가 완성된다. 신문 광고 디자인, 포스터 문구, 브로슈어에 쓰일 일러스트도 뚝딱뚝딱이다. 직원들은 수시로 들락거리며 ‘보물’들을 챙겨갔다. “되지도 않는 걸 갖고 고민할 시간에 되는 일을 하면 되죠. 되는 것만 찾아하기도 바쁜데.”

멀티 작업에 능한 손은 마치 팔이 여럿 달린 고대신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여러 가지 일을 걸쳐 하고, 꿈과 현실, 어제와 오늘을 산만하게 오가며 일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그는 이를 자신의 상상력을 유지시켜주는 에너지원이라고 했다.

‘별천지’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그의 손은 많은 일을 벌여왔다.

# 남자는 다 그래

이순(耳順)이 된 남자도 때론 엄마가 그립다. 남자는 결혼하고 나면 엄마 생각이 더 난다. 우선 찌개맛ㆍ김치맛이 입에 설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했는데 밥맛 없고 기운이 처지니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뭣도 모르고 “우리 엄마가 끓여준 건 다른데”라고 한 마디 내뱉는 순간, 아내의 뾰족한 말이 튀어나온다. “그럼 엄마하고 살아요.”

남자는 이내 입을 다문다. 그러길 오래, 엄마만 생각하면 코끝이 맵다. 강 대표는 자기 안의 이 순한 감정이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걸 빨리 알아챈다. 남자들은 본래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걸.

그리고 그는 상상한다. ‘어머니 마을’이 있으면 좋겠다! 실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벌써 반은 진도가 나가 있다. 그가 한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꾀하고 있는 ‘나미나라 연방공화국’ 프로젝트다. 폐허가 된 남이섬을 해마다 200만명 이상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그에겐 비법을 구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남이섬처럼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숱하다.

그중 10군데와 손을 잡았다. 청주 어머니마을, 광진구 동화나라, 양평 쉬쉬놀러리공화국, 인천 역발상공화국, 광명 노다지공화국, 가평 자라나는공화국 등이다. 청주 어머니마을은 그의 고향 단양의 젖줄과 연결된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사람 30명이 모였다. 케이블TV 방송인은 종일 ‘어머니의 날’ 방송만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엄마만 그리겠다는 화가도 있다. 토담집ㆍ온천 등. 이쯤 되면 ‘어머니 나라’는 반은 지어진 셈이다. 광진구 동화나라의 꿈은 벌써 여물고 있다. 내년 4월 세계동화축제가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다. 이를 위해 강 대표는 현재 영국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아동도서축제위원회 회의에 참석, 동화나라축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10개 연방공화국에선 유럽연합(EU)처럼 ‘나미나라공화국’ 화폐와 여권ㆍ교통카드 등을 함께 쓸 수 있다. 오는 9월 10일, 이 10곳 시장ㆍ군수가 프레스센터에 모여 선포식을 한다. 꿈과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지방자치단체 중에 시설을 만들어놓고 운영을 못하는 데가 많아요. 지금까지 수십억, 수백억원씩 들여 박물관ㆍ공연장을 만들어놓았지만 텅텅 비잖아요. 그런 걸 상상디자이너에게 맡겨 보자는 것이죠.”

10개 상상나라에서 일할 일꾼도 모집한다. 일명 ‘가짜 박사를 모십니다’. 자기소개서는 A4 용지 1장이면 된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무얼 할 수 있는가를 소신껏 쓰면 된다. 유명인사 추천서도 필요 없다. 대신 부모님 추천서가 필수. 내 자식을 제일 잘 아는 건 부모니 말이다.

그의 직원 채용 방식은 ‘거꾸로 면접’으로 유명하다. 사장이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궁금한 걸 물어보라는 것이다. 질문을 잘하는 녀석이 역시 똘똘하다.

# 다시 청춘이다 2000년 12월 31일, 그는 강을 건넜다. 아들과 함께 남이섬에 들어왔다가 홀로 남았다. ‘강변가요제’로 유명했던 섬, 쇼가 끝난 무대처럼 초라한 섬은 IMF를 거치며 경영위기에 내몰렸다. 남이섬을 ‘노래의 섬’ 테마파크로 만들자는 작업이 진행됐다. 문화 현장 이곳저곳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전문디자이너로 뽑혔다. 그는 섬을 찬찬히 탐색했다. 닷새 동안 머물며 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그의 눈에 구석에 쌓아놓은 나무토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남이장군섬이니 장군 캐릭터나 만들어 보자고 했다. 100장의 장군 캐릭터를 그리고, 그가 그린 밑그림으로 나무공예가들이 장군상 100기를 만들었다. 남이섬 첫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2001년 사장 제의를 받고 그는 단돈 100원짜리 월급쟁이 사장을 자청했다. 그리고 1년간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10년이 지난 남이섬은 직원 200명, 300억원의 매출을 자랑하는 우량 기업이 됐다.

그가 지금 꾸는 꿈은 ‘양산박’ 세상이다. 괴짜들이 기 활짝 펴고 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곳이다. 왕조 시대라면 반역이겠지만 21세기엔 창조의 도가니가 되는 공동체다. 저지르기 좋아하는 사고뭉치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주물러볼 수 있는 곳, 거기에선 종일 노래만 불러도 뭐랄 사람이 없고, 춤만 춰도 미쳤다 하지 않는다. 종일 사진만 찍어도 그러거나 말거나다. 아날로그라면 필름도 무제한 리필. 가령 물자동차를 만든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뭐가 되든 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거다. 먹고 놀고, 먹고 자는 그런 웃기는 동네가 있다면 그건 그대로 볼거리다. 한 달에 한 번 ‘또라이 페스티벌’도 연다. 관광이 따로 없다. 그러다 유레카의 순간, 누군가 실용 가능한 발명에 성공한다면 그건 또 다른 얘기다. 그의 말대로 “관광은 서비스에서 제조업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창조는 흙장난에서 시작됐다.

괴짜마을엔 내로라하는 컬렉터도 자신의 보따리를 싸들고 오게 한다. 그들의 소망인 박물관을 지어주는 것이다. 악기 3만점을 모은 컬렉터, 사진기ㆍ만년필ㆍ모자ㆍ돌…. 고집스럽게 모으며 애지중지 다뤄온 소중한 물건들이 집에선 천덕꾸러기 신세지만 제 집을 갖게 되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그에게 사람들은 “남이섬 성공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한 마디다. “내 마음대로 했더니 다 좋다더라”는 것이다. 그에게 섬은 그저 캔버스였고, 그는 맘껏 그리고 채색했다. 그가 꿈꾸는 괴짜 상상그룹은 또 다른 ‘강우현들’의 모임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강 대표는 지금도 피가 뜨거워진다.

# ‘나는 ○○다’ 그를 만나려면 반드시 남이섬에 가야 한다. 그는 기어이 그곳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보고 듣고 만지다 보면 사람들은 금세 상상의 포로가 된다. 지자체와 기업들이 줄서서 그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한 가지. ‘어떻게 해야 창조경영이 되냐’다. 강 대표는 창조경영이라 불리는 역발상, 거꾸로 경영의 원조다. 섬에 수북이 쌓인 골칫덩이 쓰레기 소주병을 모아 공예품을 만들고, 봉지쌀을 관광상품으로 팔아내는 그다. 그런 그가 멘토링을 구하는 이들에게 하는 조언은 아이러니하게도 벤치마킹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궁해도 남이 하는 걸 해선 승산이 없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창조경영이라고 내세우기만 하지,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몰라요. 대개 기업들은 창조경영을 내세우면서 무엇부터 하냐 하면 ‘창조경영이란 무엇인가’부터 따지죠. 토론이 필요 없어요. 일단 시작해야지. ‘반도체의 미래’라면 그림을 죽죽 그려나가다 ‘반도체는 물’이라는 식의 구체적인 결론이 나와줘야죠.”

언어적 디자인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말은 형상을 만들어낸다. 태초에 먼저 말씀이 있었다.

그의 창조적 발상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많은 갈래를 만나게 된다. 1991년부터 재생종이 쓰기 운동을 벌이던 그가 있고, 중국과 수교 전인 1990년에 문화비자를 받아낸 1호이기도 하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좋은아버지 운동도 그가 처음 벌였다. 국내 일러스트레이터의 등용문 격인 한국출판미술협회를 만든 것도 그다. 심지어 감자줄기를 가장 길게 키워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어릴 때 피눈물나게 일하고 공부해야 하는 건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죠. 남 따라다니지 말고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야 해요.”

그가 말하는 경쟁은 세상의 경쟁과 좀 다르다.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것, 경쟁할 필요가 없는 걸 만드는 거다. 컵이 잘 팔린다고 다 컵을 만드는 게 아니라 주전자를 만드는 식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이다.

남들은 마지못해 시간을 죽이는 군대에서조차 그는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내 제대 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다. 생존력으로 따지자면 아마존에서도 멋지게 살아 돌아오는 ‘베어 그릴’ 못지않다.

그는 언젠가 남이섬에서 팔 수 있는 것을 종이에 적어봤다. ‘물안개, 별 헤는 밤, 보름달, 바람소리, 나무 그늘, 단풍, 모닥불, 낙엽 타는 냄새, 얼음으로 세운 탑, 밤새 키운 고드름, 눈 밟는 소리, 모닥불 쬐는 눈사람, 잔디밭 뛰어노는 토끼, 화장실에 놓인 책 한 권, 배 기다리는 시간….’

누군가는 이를 시로 노래하고, 어떤 이는 그림으로, 사진으로 담는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건져낸다. 그건 그리움이기도 하고, 아늑함ㆍ향수ㆍ동경ㆍ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부리는 상상의 마술에 쉽게 걸려든다. 먼 곳에서 실어온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아련한 추억의 문으로 들어가고, 작은 눈사람 조각 앞에서 성당의 기도 소리를 떠올린다. 또 장난감 같은 열차를 타고 내리며 하얀 눈 덮인 알프스 융프라우를 넘어가는 꿈을 꾼다. 그의 마술에 한순간 행복해진다. 그는 우리 시대 일루셔니스트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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