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0회> 모든 길은 하나로! (1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도, 도, 도…”

권도일은 말더듬이처럼 외마디 소리를 연발했다. 그도 그럴 밖에, 모든 정보가 차단된 동토의 땅 북한에서 느닷없이 도종호 상무의 이름을 들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도종호라면 거성자동차의 전략담당 상무로서, 로비스트 송달민과 함께 거성그룹을 좌지우지하던 인물 아니었던가.

“왜 그렇게 놀라십네까? 도종호 상무 모르십네까?”

“알지요, 아다마다요.” 돌이켜 보면…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인계의 거물 크리스 뱅글을 끌어오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권도일을 거성자동차로 영입한 인물이 바로 도종호 였다. 그뿐인가? 재벌2세에게 알랑거려서…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한 권도일에게 1974년산 치타를 몰게 한 장본인도 역시 그였다.

“그 양반이 내 동생입네다.”

“네? 동생요? 혹시 외국 유학 중에 만나서 형제의 연을 맺었나요?”

“아니… 친동생입네다. 배 다른 동생이긴 하지만.”

“아! 그렇군요.”

권도일은 그제야 그들의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도형철, 도종호…

“좀 이상합네까? 나이로 따져보니 계산이 서질 않지요? 내가 마흔 일곱, 동생 종호가 아마 마흔 셋?”

“그러네요. 남북이 갈린 지 6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어떻게 40대의 배 다른 형제가 생겨날 수 있을까요?”

“그거야… 내 오마니가 김일성 대학 체육교수이다보니 그럴 수 있었습네다. 올림픽 등등… 선수들이 해외 경기에 나설 때 오마니가 동행했습네다. 그러다가 1964년 동경에서 열린 18회 올림픽 때…”

“어머님께서는… 월남하신 아버님을 만나셨던 거로군요. 동경에서.”

“그렇습네다. 그 다음해, 1965년에 내가 태어났고, 체육교수인 어머님은 나를 꼴푸선수로 키우신 것입네다.”

“그런… 눈물 어린 사연이 있었네요.”

“눈물은 무슨 눈물! 당에서 알아챘다면 평양에서 살지도 못하고 쫓겨날 뻔했지요. 하지만 오마니는 전문성을 인정받아서 당당히 교수 직책을 유지할 수 있었습네다. 어쨌든 그건 개인사일 뿐이고…”

도형철은 각본을 읽어나가듯 술술 지난날의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쩌면 가슴 속에 알싸하게 퍼져오는 맥주의 힘인지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예원희는 권도일의 팔뚝 애무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 돌덩이처럼 차가울 것이라 여겼던 북한 여인으로부터 팔뚝을 애무 당하는가 하면, 뜻밖에도 맛과 향기가 뛰어나고 거품이 풍부한 북한 맥주에 취해보기도 하고, 칼날처럼 날카로울 것이라 여겨왔던 당 간부로부터 인간적인 애환이 담긴 옛 이야기를 듣는 기분은 실로 야릇하기만 했다.

“본론은… 권도일 선생을 통해서 내 동생에게 부탁을 전하자는 겁네다.”

“네, 말씀하시지요. 꼭 전하겠습니다.”

권도일은 이제야 올 것이 왔다는 투로 마음을 다잡았다. 도형철은 거품이 흐르도록 가득 채운 맥주를 다시 한 번 벌컥벌컥 들이키는 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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