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정태일 기자]올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 삼성전자 부스에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ㆍ당시 삼성전자 CEO)이 깜짝 등장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기자들이 쏜살같이 달라 붙어 갤럭시S3 출시 시기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최 부회장은 대답을 이리저리 회피하다 딱 한마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지금 내놓으면 다 베낀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베일 속에 꽁꽁 숨겨뒀던 갤럭시S3가 마침내 공개됐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전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집중적으로 매달렸다는 것. 사진이 첫 공개됐을 때만 해도 ‘디자인이 새로울 게 없다’, ‘삼성은 역시 하드웨어로 승부한다’는 반응 중심이었다. 하지만 제품을 실제로 보고 만져본 사람들의 표정은 달랐다. 손에 감기는 듯한 둥근 형태, 곡선 중심의 디자인은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상식’처럼 여겨졌던 직사각형 스마트폰 대신 삼성전자는 ‘유선형’ 콘셉트를 과감히 들고 나왔다. 5년 단위로 움직이는 삼성전자 디자인 전략에 비춰 유선형은 이미 2007년부터 구상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는 최 부회장이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취임한 시기이기도 하다.
멀리 보면 5년을 준비한 ‘작품’이기에 최 부회장은 기자들 앞에서 ‘베끼기’에 대한 우려를 솔직히 드러냈다. 실제 화웨이, ZTE 등 중국 업체들이 높은 사양의 하드웨어 제품을 들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기도 했다. 소수 기업만이 스마트폰을 만드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희소성에 기반한 혁신은 대중의 물결을 타고 희석된 만큼 경계의 고삐를 더욱 세게 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최 부회장이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에 날렸던 화살이 현재는 오히려 삼성전자의 심장에 더 단단히 박힌 상태다. 이 화살은 최 부회장보다 1년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서 날라왔다. 활 시위를 당긴 석궁은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지만 그의 뒤에는 현재 애플의 수장인 팀 쿡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 디자인, 의장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 부회장이 그토록 경계했던 ‘베끼기’를 한 주체가 다름 아닌 삼성전자라는 셈이다. 지난해 4월 애플의 제소로 시작된 양사의 특허소송은 9개 나라로 확대된 가운데, 현재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 최종 판결을 앞둔 상태다.
법정 결론까지 가기 전 최 부회장과 팀 쿡은 직접 만나고, 전화통화까지 하며 합의를 시도했지만 매번 불발에 그쳤다. 어느 한 쪽이 접고 들어가야 성사되는 협상에서 둘 다 쉽게 자존심을 굽힐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21일(현지시간) 세너제이 북부지법에서는 3주간의 집중심리 뒤 양측의 입씨름을 마무리하는 최종 변론이 있었다. 애플 변호인은 “아이폰의 가장 열렬한 팬인 삼성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제품을 모방했다”, “삼성이 아이폰의 모든 디테일, 특징 등을 따라했다”며 삼성전자를 자극했다.
삼성전자 변호인 역시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 손발을 묶으려 한다”, “모든 스마트폰이 사용하는 둥근 모서리 형태의 직사각형을 독점하려 한다”며 애플의 행위가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독했던 최 부회장과 팀 쿡의 승부는 곧 다가올 진실게임 결말에서 갈릴 전망이다. 전세계의 눈과 귀가 평결을 내놓을 9명의 배심원들을 향해 집중되고 있다.
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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