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8회> 사랑을 위한 의식 26
밀차를 끌고 가는 제1조 여성 도우미는 원래 평양골프장에 소속된 캐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전 세계 여자 프로꼴푸 2012 겨울대회’는 개최 경위야 어쨌든 간에 국제적인 정규 대회이므로 그녀는 오로지 밀차나 끄는 허접한 일을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래봬도 내레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고 있습네다.”
“그래요? 인물만 고운 줄 알았더니 실력도 뛰어난 인재시네요?”
“쑥스럽습네다. 하지만 그까짓 일로 호들갑 떨 이유는 전혀 없습네다.”
“골프 실력도 뛰어나겠네요? 그런 줄 알았다면 이번 대회에 제 개인 캐디를 맡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봐요.”
립서비스처럼 들리겠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강유리는 진정성이 드러나도록 여성 도우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쑥스럽대도 자꾸 과찬을 하시면 어쩝네까?”
“알았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강유리로서는 과찬이 아니라 진정 원하는 바일 수도 있었다. 거성그룹에서 이번 골프대회를 연 까닭을 캐보면 당장에라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재벌 2세는 차라리 이번 골프대회가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것조차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거성그룹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서 유호성이 모는 랠리카가 북한 영토를 통과하는 것뿐이었다. 이번 골프대회는 그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 덤으로 개최하는 여벌 경기였던 셈이니까.
재벌 2세는 참가 선수마다 개별적으로 배정되어야 할 캐디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고, 어영부영하던 중에 그녀의 매니저로 알려진 백광돌을 전속 캐디로 등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말입네다…, 태성호를 끼고 도는 28만평 골프장 부지 내에서 저보다 고운 여성 동무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입네다. 호호호.”
그래, 아무러면 어떠랴. 28만평 부지 내에서 제일 어여쁜 여성 동무의 도움을 받든,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도움을 받든… 어떤 경우라도 지금 이 순간엔 유호성을 랠리 경기에 빼앗겼다는 사실만이 가슴에 메일 뿐이었다.
“자, 이번 경기에서는 시작할 때의 타격 순서를 추첨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습네다. 그러니 모두들 심호흡 한 번씩 하시고 이 죽봉을 뽑아주셔야 합네다. 왜냐하면 난생처음으로 벌이는 경기라서 선수들의 평균 실력이 기록되어 있질 않기 때문입네다.”
그 여성 도우미는 피리처럼 생긴 대나무봉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타격 순서를 정하자고 했다. 마침 강유리가 뽑은 굵은 대나무봉에는 붉은색 테이프가 넉 줄이나 감겨 있었다. 마지막 티업 선수로 정해진 것이었다.
첫 번째 티업 선수가 몸을 푸는 동안 강유리는 멀찌감치 뒤로 물러서서 발아래로 펼쳐진 평양골프장 코스를 전략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1, 2, 3번 홀의 페어웨이가 세 갈래 길처럼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너머 고층 건물 사이로 두 갈래의 페어웨이가 가로로 단정하게 누워 있었다. 아마도 저 고층 건물 틈새 어딘가에 경기 기간에 묵어야 할 호텔이 있으리라.
“양각도호텔이 저기 어딘가에 있나요?”
“아, 그게 말입네다. 저 건너에 제일 높게 보이는 흰색 건물입네다.”
여성 도우미가 손가락 끝으로 페어웨이 끝자락 방향을 가리켰지만 강유리는 차라리 허공 위에 뜬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로 배정된 양각도호텔의 위치를 굳이 알아낸들 뭐하나… 하는 생각에 앞서 눈물이 글썽거렸기 때문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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