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이혼하지 못하게 말려야 할 것 같아요.”
영화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와 ‘26년’(감독 조근현)의 개봉을 앞둔 배우 이경영의 재치있는 답변이었다. 그는 오는 22일 개봉하는 ‘남영동 1985’의 이두한 역과 29일 개봉을 앞둔 ‘26년’의 김갑세 역으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지난 2002년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린 이후 좀처럼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그에게 이번 작품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남영동 1985’는 다시 제가 영화란 숲에 돌아올 수 있게 해준 작품입니다. ‘너는 원래 영화란 숲에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면서 자릴 비워두고 기다려준 영화한테 고맙죠. 이 안에 다시 돌아오니까 편했고, ‘이제부터 진짜 설레고 즐거운 여행길을 맞이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그는 ‘남영동 1985’에서 고문기술자 이두한 역으로 돌아왔다.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고문을 받은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경영은 이 작품에서 철두철미하고 냉혈한 고문기술자 이두한으로 분했다. 영화를 접한 사람들은 이두한을 악역이라 칭하지만 그는 남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두한은 어쩌면 잘못된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임무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속에서 제가 그리고 싶었던 이두한은 철저한 애국주의자였죠. 관객들한테는 저 사람이 그릇된 애극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달해 주고 싶었습니다. 김종태(박원상 분)의 피해와 고통이 커지고 인권 유린이 극명하게 드러나면 영화가 전달하고픈 진정성이 더욱 커질거라 생각했죠.”
실제 이경영이 담아냈던 이두한과 실제 인물 이근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는 일부러 이근안에 대한 조사를 마다했다.
“캐릭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이두한에게 들어오는 것이 싫었어요. 이경영에 의한 이두한이기 때문에 거부했었고, 단순하게 시나리오 상의 캐릭터로 접근했죠. 어쩌면 ‘이근안도 시대의 희생자구나’라는 연민이 들었어요. 그가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상황에 미안한 마음을 가져서 본인의 작은 평화도 얻고, 화해했으면 하는 제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정지영 감독은 우리 사회의 일부분을 드러내 일련의 메시지를 주고자 한다. ‘부러진 화살’로 사회의 큰 파장을 불러왔던 그는 같은 해 ‘남영동 1985’로 또 한번의 파장을 예고했다.
“정지영 감독님은 한결같은 분이죠. 자신이 신념이라 믿는 진실에 대해 올곧은 길을 걷는 사람이죠. 감히 표현하자면 ‘현자의 시선과 젊은이의 심장을 가진 분’이죠. 저에게 있어서는 젊은 아버지 같은 느낌입니다. 때론 엄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한없이 기대고 싶기도 합니다.”
앞서 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1985’가 “어떤 방식이던지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경영 또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어떤 나라님을 뽑느냐에 대해 말이 많이 나오는 시점에서 정지영 감독님의 말은 민감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떤 후보가 되더라도 과거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세상을 이끌어달라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로 따졌을 때 소수가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면 안되잖아요. 다수가 이 작품을 접해 소수를 자극시켜 올바른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이끌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고문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이경영은 이를 ‘영혼조차도 보기 힘들었던 고문’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장면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한참 고문에 몰두하고 있는 숨소리 하나 안들리는 분위기에서 나지막하게 ‘컷’이라 말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어요. 감독님은 그런 적 없다고 하셨는데, 녹음 기사님이 그 소리를 녹음했죠. 다들 스튜디오를 떠도는 영혼도 연기지만 고통스럽게 느꼈으리라 이야기했죠. 영혼조차도 보기가 힘든 고문이 사실적으로 이뤄졌다는 자체가 충격적인거죠.”
이경영은 이 작품에서 철저하게 이두한으로 분했다. 그는 이두한을 이제껏 겪었던 캐릭터 중에 가장 센 역할로 손꼽았다.
“고문 기술자라는 역할을 연기로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죠. 한동안은 마음이 무거웠었습니다. 이제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착한 역할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앞으로 나오는 작품들에서 연이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남영동 1985’를 아버지, ‘26년’을 어머니로 표현했다.
“두 작품 모두 출연 배우가 자식이라면, ‘남영동 1985’는 동맥같은 묵직한 영화, ‘26년’은 여러 가닥의 실핏줄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 같은 영화죠. 그래도 결국 혈관이라는 것은 같잖아요. 두 부모님이 이혼하지 못하게 말려야 할 것 같네요.”(웃음)
이경영은 촬영장에 나가는 자체를 ‘소풍’에 빗대어 말했다. 오랜 침묵의 기간 끝에 찾아온 ‘남영동 1985’를 비롯한 작품들은 그에게 매일 소풍을 가는 느낌을 가져다줬다.
“힘든 시간들이 없었다면 소풍이라는 단어도 사용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제부터 항상 올곧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소풍이 내년에 끝나도 후회가 적을 것 같지만, 소망이 있다면 지금의 소풍이 한 200년 정도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에게 말하지 못한, 말하지 않은 사정은 있기 마련이다. 그는 이 기회를 빌어 ‘모비딕’을 연출했던 박인제 감독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인제야, 형 봐라. 형도 큰 상처가 있는데 절뚝거리지만 이제 걸음마를 다시 시작했다. 언제든 기회는 있으니까 용기 잃지 말아라.”
‘남영동 1985’를 기점으로 스크린으로 다시 돌아온 이경영. 그는 오랜 기간 기다려준 팬들에 대해 인사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53세라는 나이에 이제 연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우는 평생 철이 들면 안된다’는 은사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옳은지, 감독님이나 작품이 원하는 방향인지 생각해가면서 그것이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제가 필요로 하는 곳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영화의 아날로그와 디지털 적인 감성을 모두 겪은 이경영이 선보일 모습에 그동안 그를 기다렸던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정원 이슈팀 기자 / chojw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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