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이병훈 사극의 특징은 주인공의 석세스 스토리다. 갖은 고난과 훼방을 물리치고 목적을 달성하는 선한 주인공의 이야기다. ‘허준’ ‘상도’ ‘대장금’ ‘서동요’ ‘이산’ ‘동이’가 모두 그랬다. MBC 월화사극 ‘마의’도 마찬가지다. 수의사로 시작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어의까지 오른 백광현(조승우 분)이 헌신적인 인술을 펼쳤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마의’가 시작할 때만 해도 주목도가 별로 높지 않았다. 사극 최고의 거장 이병훈 PD가 연출한 사극치고는 출발이 미약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병훈 스타일의 안정적인 전개 방식이 먹혔다.
하지만 ‘마의’는 40년간 사극을 연출한 이병훈의 기존 사극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 단계씩 문제를 풀어나가는 미션 사극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이야기가 그렇게 어둡지 않다. 이병훈 사극은 검계 등 암약 조직을 등장시켜 미스터리 수법을 가미하므로 분위기가 어두운 경우가 있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병훈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마의’ 주인공인 조승우는 심각하지 않다.
게다가 ‘마의’는 이병훈 사극 중 멜로를 가장 많이 첨가한 사극이다. 조승우는 강지녕(이요원), 숙휘공주(김소은)뿐만 아니라 남편을 잃은 대제학의 여식 서은서(조보아) 등 세 명의 양반 또는 로열패밀리 여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의녀청에는 ‘백광현 팬덤’이 거세게 불고 있다. 훈남 백광현이 의관취재 임상시험에서 엘리트 의생 윤태주(장희웅)와 대진을 하게 되자, 의녀들은 “얼굴로 승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광현을 응원한다.
‘허준’ ‘상도’ ‘대장금’ ‘서동요’ ‘이산’ ‘동이’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심각했다. 이때는 그래야 했다. 하지만 ‘마의’ 주인공 조승우는 천민에서 출발했지만(사실은 양반 자식이다) 여유가 있다. 조승우는 소의 역병이 사람에게도 퍼져나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죽은 소가 묻혀 있던 땅을 파내다 이요원에게 “이 와중에 할 말을 아니지만 삽질을 야무지게 잘하시네, 전생에 소였나 봐”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삽질커플’이 됐다.
조승우는 이요원에게 “낮에는 정숙하고 밤에는 놀 줄 아는 여인”이라고 말했더니 26일 방송된 17회에서는 조승우가 시침 하는 방법에 관해 “궁금해요, 궁금하면 다섯 푼”이라고 개그콘서트의 ‘거지의 품격’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조승우는 마의를 하다 의생 시험에 통과했으나 문진 수업에 적응하지 못해 교수로부터 의녀청으로 쫓겨났다. 그곳에서 보충수업을 더해 의생 수업을 받으라는 일종의 벌이었다.
과거 같으면 와신상담하는 모습이 그려졌을 테지만 조승우는 의녀청의 의녀들과 신이 나서 놀고 있었다. 조승우가 걱정돼 그를 찾아간 이요원이 오히려 조승우를 질투하는 상황이다. ‘마의’의 조승우는 열심히는 하지만 놀면서,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이 점에서 백광현은 군대를 두 번 가고도 긍정성과 유쾌함을 잃지 않은 싸이와 상통하는 성격이다.)
물론 ‘마의’도 거시적인 갈등 구조는 가지고 있다. 천민인 마의는 인의가 될 수 없다. 조승우가 죽어가는 강마의를 살리고도 사람에게 시침을 했다는 죄로 장 30대를 풀스윙으로 맞는 모습은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잘못된 구조를 개혁하려는 내의원 수장 고주만(이순재)-현종(한상진)의 개혁라인이 있다. 고주만은 추천제였던 의생선발과정을 공채시험제로 바꿔 마의인 백광현이 인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권신들의 반대에도 신분제 사회라는 벽에 막혀 재주를 펼 수 없는 인사들을 발탁한다. 신분이 양반인 인의 이요원은 조승우에게 ‘족집게 과외’까지 해준다. 의생선발고사에서 이요원이 찍어준 문제가 절반 이상 나왔다는 건 현재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좌의정 정성조(김창완)와 이명한(손창민)-대비(김혜선) 등 보수수구세력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보수세력의 중심인물인 손창민은 원래 천한 마의 자식이란 게 알려질까 두려워 가족을 다 버린 콤플렉스형 인물이다. 그는 아들인 성하(이상우)를 이요원과 결혼시키려 한다. 백광현한테는 큰 시련이다. 하지만 시체(?)도 살려내는 재주를 지닌 백광현에게 믿음이 간다. 그는 자신이 말한 ‘천한 것은 죄가 아니다. 천한 것을 죄라 여기는 세상이 잘못된 거다’를 관철시킬 수 있는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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