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0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1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치타가 그렇게 낡았나요? 지난 번 몬테카를로 랠리에서는 멀쩡하던데요?”
“몬테카를로 랠리는 어쨌든 포장도로를 달리는 경기였지요. 하지만 이번 5개국 관통 랠리는 다릅니다. 고비사막을 통과해야 하고 황토고원과 두룰룬 산맥의 험한 바윗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1974년 산 치타는 아마 두룰룬 산맥 위에서 멈추게 될 겁니다. 그곳에 고립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추위, 극악무도한 깽들…”
“저 역시 코-드라이버로 함께 타고 있을 테니 죽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권 전무님은 다른 머신을 몰아야 합니다. 어찌 권 전무를 유호성 선수와 함께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춤추던 아가씨와 마담을 다른 방으로 물린 뒤였으므로 대화는 거짓 없이 이어져 갔다. 물론 주안상 위에는 술과 안주가 그득했지만 그따위 것에 눈길을 줄 게재도 아니었다.
“그럼 저는 다른 차를 몰고 출전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유호성이 몰던 재규어 XKR… 기억하시지요? 그 머신을 몰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시 그 차를 몰았던 전진후 선수를 코-드라이버로 채용했습니다. 아무래도 경험자와 함께 하는 것이 좋겠지요.”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습니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유호성 선수에게 1974년 산 치타를 맡기는 까닭은…”
“그건 왕회장이신 아버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지요.”
“그랬군요.”
재벌2세와 권도일은 거의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막 한 가운데를 달리다가 뒤집어진 1974년 산 치타. 그 차에 온 몸을 눌린 채 불에 타들어가던 어느 사나이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님은 아직도 당신을 대신해서 그 친구 분이 죽은 것이라고 여기고 계십니다. 사실이기도 하고요.”
“왕회장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일을 벌이신 건 아니잖습니까? 어두운 밤에 비행기에 구조신호를 보내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래도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과 함께 불을 질렀으니… 평생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겠지요. 그날 아버님은 죽어가는 친구 앞에서 맹세를 했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날 불에 탄 1974년 산 치타를 몰고 랠리를 완주하시겠다는… 그 친구 분 영정에 랠리 완주 상패를 받치시겠다는…”
재벌2세와 권도일은 눈을 감은 채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들이 눈을 감은 이유는 자명했다. 왕회장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1974년 산 치타를 몰고 랠리에 참여해야만 했지만… 또 다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는 모순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겉으론 소박하게 꾸며졌지만 실제론 최고급을 뽐내는 요정. 그 요정의 어느 룸 안에서 재벌2세와 권도일은 회한에 젖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유호성은 일생일대의 호사한 스포츠섹스를 감행하기 직전이었다. 이를테면 천정이 뱅뱅 돌기 직전이었다는 말이다.
“이게… 옷고름이로구나. 이걸 당기면 뭐가 나오느냐? 모시적삼이 나올까? 아니면 비단 브래지어가 나올까?”
“어머나, 대감. 망측하여이다.”
“우하하, 그렇지… 내가 대감이었지?”
꿀물 한 사발을 들이킨 유호성은… 원앙금침 위에 팬티바람으로 가부좌를 튼 모습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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