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건강에 좋다’…과학으로 증명

새소리·빗소리 등만 들어도 통증 완화

향기는 몸속 혈류와 닿아 변화 일으켜

검은목 꾀꼬리가 노래하는 모습. [픽사베이]
검은목 꾀꼬리가 노래하는 모습. [픽사베이]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도시의 아침은 어김없이 분주하다. 요란한 알람 소리, 쫓기듯 걷는 출근길 발걸음, 교통 체증과 소음으로 가득한 거리. 하지만 이따금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지저귀는 새소리가 마음을 편안히 어루만질 때가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깨의 근육 긴장이 살짝 풀리고, 숨결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자연을 느낄 때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과학은 이 감각의 비밀에 강력한 답을 건넨다. 우리가 자연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기호나 기분이 아니라, 몸 깊숙이 새겨진 생존의 언어라는 것.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생물학과 다양성을 연구하는 캐시 윌리스 교수는 자연이 정말로 이로운지를 묻는 방대한 연구 자료를 탐독했다. 그 여정의 결과물이 바로 그의 신간 ‘초록 감각’이다. 인간의 오감이 자연에 얼마나 정교하게 반응하는지 조목조목 입증하는 일종의 탐험 기록이다.

이를테면 자연의 소리가 통증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는 단순히 낭만적인 생각이 아닌 과학의 언어로 설명된다.

이란의 의학자들은 중환자실 환자들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90분간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거나 아무 소리도 들려주지 않았다. 실험 중에는 진정제나 진통제도 쓰지 않았다. 연구팀은 30분 간격으로 환자들의 통증을 측정했는데 결과는 명확했다. 모든 환자가 처음에는 비슷한 강도의 통증을 호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의 소리를 들은 환자의 통증 강도는 눈에 띄게 낮아졌다.

자연의 소리는 제왕절개를 받은 여성의 수술 후 통증 관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새 노랫소리, 빗소리, 강물 소리, 폭포 소리, 정글 소리를 20분간 들은 여성들이 아무 소리도 들려주지 않은 여성들보다 통증이 확연히 덜했다.

캐나다 칼턴 대학교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 결과도 비슷했다. 자연의 소리를 들은 환자들은 도시의 소리를 듣거나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환자들보다 통증, 심박수, 혈압, 불안 등 모든 수치에서 건강 상태가 평균 1.8배 개선됐다. 흥미로운 건, 자연의 소리가 복잡하고 다양할수록 효과가 더 컸다는 점이다.

편백나무숲으로 이름난 전남 장성 축령산. [전남 장성군]
편백나무숲으로 이름난 전남 장성 축령산. [전남 장성군]

귀뿐만 아니라 눈과 코도 반응했다. 자연을 보고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몸은 빠르게 나았다. 창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병실에 누운 환자들은 벽을 바라보며 회복하는 환자들보다 무려 3배나 빠르게 호전됐다. 장미 향기는 운전자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안전 운전을 도왔고, 편백나무와 노간주나무 향기는 면역세포 중 하나인 NK(자연살해)세포 수치를 뚜렷하게 높여줬다.

저자는 자연이 우리 건강에 주는 효과로 보자면 후각이 가장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향기 입자는 몸속 혈류와 직접 맞닿아 생리적인 변화를 일으켜서다.

그는 “국민건강보험, NGO, 자선단체 등 여러 조직에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자연과 상호작용할 경로와 활동을 ‘처방’할 수 있도록 안내서, 입문서, 산책로와 공간 지도를 배포하고 있지만 식물의 향이나 다양한 환경 미생물군과 같은 특정한 자연 요소는 다루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자연의 시각적 측면에만 주목하고 후각이나 청각은 뒷전으로 미루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초록 감각: 식물을 보고 듣고 만질 때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일들/캐시 윌리스 지음·신소희 옮김/김영사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