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쇼츠를 볼까?
현대 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불안하도록 여기게 만든다. 쉬고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멍하니 있으면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생산적이지 않은 취미 생활은 사치고, 푹 자는 건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실패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압박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쇼츠의 나라’로 이민하고 싶어 하도록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선 손가락을 한 번 쓸어내리면 무한한 정보와 자극이 펼쳐진다. 무언갈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뒤덮는다.
[헤럴드랩] 한국이 인공지능(AI)으로 대량 생성한 저품질 영상 ‘AI 슬롭(AI Slop)’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로 조사됐다.
6일 글로벌 영상 편집 플랫폼 ‘카프윙’에 따르면, 한국 유튜브 채널의 AI 슬롭 누적 조회수는 약 84억 회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는 2위 파키스탄(53억 회), 3위 미국(34억 회)을 크게 앞서는 수준이다.
문제는 다른 무언가를 하는 대신 쇼츠를 보는 것이 단순히 시간을 빼앗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점차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는다.
공장처럼 찍어낸 자극적인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소비할수록, 집중력과 기억력, 깊게 사고하는 능력은 저하된다.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옥스퍼드 사전이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뽑은 ‘브레인 롯(brain rot)’이다.
쇼츠를 무아지경으로 보고 나면 생각의 자리에 공백이 남는다. 왜 휴대전화를 켰는지, 오늘은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 조금 전까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전부 희미해져 있다. 몇십 초짜리 콘텐츠에 뇌가 연달아 반응하느라, 생각을 붙잡아 두는 능력은 뒤로 밀려난다.
다시 말해 불안감을 피하려 켠 화면 속에서 되레 생각하는 법을 영영 잊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바뀐 뇌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는 걸까. 다행히 우리 뇌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불안과 압박, 반복되는 자극 속에서도 계속 적응하고, 다시 균형을 찾으려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상 깊숙이 침투한 쇼츠와의 싸움도 완전히 비관할 필요는 없다.
물론 거리 어디를 둘러봐도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사람들뿐이라 이미 싸움의 판세가 기울어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신경과학 연구는 뇌가 환경과 경험에 따라 구조와 기능을 바꾸는 ‘뇌 가소성’을 강조한다.
뇌는 고정된 상태로 머무르지 않는다. 뇌는 우리가 무엇에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고 성장하는 기관이다. 즉,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져 둔해진 뇌도 다시 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음식은 한 번 상하면 되돌릴 수 없지만, 뇌는 그렇지 않다.
그 회복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들로도 가능하다.
1. 단번에 끊을 수 없다면 빈도부터 줄이자
뇌의 보상 시스템은 새롭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무한히 생성되는 ‘쇼츠의 나라’에서 특히 취약하다. 소위 ‘쾌락에 절여졌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자극의 강도보다 자극에 얼마나 자주, 반복적으로 노출되느냐다.
짧고 강한 자극이 끝없이 이어질수록 뇌는 점점 즉각적인 보상에만 반응하는 상태로 재구성된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애나 렘키(Anna Lembke)는 저서 ‘도파민 네이션’에 “스마트폰은 디지털 도파민을 하루 24시간씩 일주일 내내 공급하는 현대판 피하 주사기이다”라고 썼다.
클릭 한 번으로 만들어지는 AI 슬롭에 대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자주’ 본다는 것에서 ‘자주’를 빼는 것이다. 즉, 노출 빈도를 줄이는 것이다.
하루 종일 쇼츠를 소비하는 뇌는 간식을 계속 집어 먹는 상태와 비슷하다. 다이어트를 할 때 당을 완전히 끊기보다 서서히 섭취량을 줄이듯, 쇼츠 역시 즉시 차단하기보다 우선 보는 빈도를 조절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아침, 저녁으로 보던 쇼츠를 아침에만 본다거나, 하루에 100개를 보던 쇼츠를 50개로 줄이는 식으로 ‘보는 개수’를 줄이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되는 간격이 길어지면, 뇌는 과잉 자극·즉각 보상 상태에서 벗어난다. 보상이 지연되는 환경에서는 도파민 회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지 않는다. 도파민 신호가 계속 높게 유지될 땐 동일한 만족을 얻기 위해 뇌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쇼츠를 접하는 빈도를 줄임으로써 보상 신호에 대한 과민성을 완화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이 방법이 반복될수록 뇌는 즉각적 보상에 끌려다니는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균형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유튜브 기록이나 인터넷 사용 기록을 확인하면, 한 번에 소비한 쇼츠 개수를 가늠할 수 있다. 한두 시간 정도 무심코 스크롤을 내려도 몇백 개 이상의 쇼츠가 눈앞을 지나쳐 갔을 가능성이 크다.
시청 내역을 직접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더 많이 보게 되니 주의해야겠다”는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그다음으로 앱을 열기 전 그날 볼 쇼츠의 개수를 미리 정해두고 기준에 도달하면 멈춘다.
예를 들어 30개라고 정했다면, 그 이상 보지 않고 앱을 닫는다. 제한을 지켜나갈수록 자동화된 습관에서 벗어나 통제할 수 있는 행동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보상을 기다릴 수 있는 나’, ‘쇼츠를 멈출 수 있는 나’라는 감각이 변화의 시작이다.
2. 수동적으로 내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고하자
이미 쇼츠를 무력하게 넘기는 데 익숙해졌다면, 쇼츠를 덜 보는 것부터가 버거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슬롭 영상을 계속 본다고 해서 새로 채워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몇 시간의 소비 이후 남는 것이 허탈함, 죄책감, 흐릿해진 판단 능력뿐일 때, 문제의 해답은 ‘시청’ 그 자체보다 ‘보는 방식’에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가짐을 바꿔보자. 쇼츠 하나를 보더라도, 무언가 하나쯤은 얻어 가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다음 영상으로 넘기기 전에 잠깐 멈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영상에서 새로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 이 내용을 조금이라도 오래 기억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늘 내가 하려던 일과 연관 지을 수 있을까. 이런 작은 간섭만으로도 관성처럼 이어지던 스크롤의 흐름을 깰 수 있다.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도 도움이 된다. 공장처럼 찍어낸 쇼츠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만약 이 쇼츠 내용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나는 뭐라고 말할까.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거 꽤 유익하네”일 수도 있고, “그건 그냥 쓰레기 같은 정보잖아”일 수도 있다.
쇼츠 사이사이에 단 하나의 질문을 끼워 넣는 것만으로도 쇼츠는 단순한 자극에서 판단과 해석의 대상이 된다. 동시에 모든 정보를 흘려보내는 대신 하나라도 얻어 가는 습관이 생기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쇼츠를 소비하면 수동적으로 보기만 했던 때와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질문을 던지고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뇌는 주체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 결과 핸드폰을 끄는 순간 사라지는 단기적 인상이 아니라 장기기억(long-term memory)으로 저장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기존 지식이나 경험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기억이 더 오래 유지된다.
이런 과정은 해마(hippocampus)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을 활성화해, 정보가 뇌 속에 남아 나중에 재사용될 수 있도록 돕는다.
3. 쇼츠 대신 멍때리기만 해도 뇌는 회복된다
쇼츠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쇼츠를 보는 대신 갑자기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하거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버금가는 소설을 쓰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부담을 주면, 뇌는 다시 가장 쉬운 선택지인 ‘쇼츠의 나라’로 도망갈 확률이 높다.
실제로 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뇌과학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뇌가 활성화되는 상태를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고 부른다.
우리가 멍하니 있을 때, 뇌는 비로소 흩어져 있던 생각을 정리하고 통합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쇼츠를 스크롤 하는 동안에는 이 상태로 들어갈 틈이 없다. 뇌는 끊임없이 외부 자극에 반응하느라 ‘정리’할 여유를 잃는다. 입력은 넘치는데, 저장과 소화는 멈춘 상태다.
그저 아무 목적 없이 멍때리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뇌는 잠시 숨을 돌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야 나아진다’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수 백, 수천 개의 쇼츠를 통한 과잉 자극 아래 놓인 뇌는 “더 달라”가 아니라 “아무것도 주지 말라”라고 외치고 있다.
쇼츠라는 차에 치여 교통사고를 당한 뇌를 회복시키고 싶다면, 잠깐만이라도 휴대전화를 끄고 가만히 앉아보자.
작은 ‘멈춤’만으로도 뇌는 스스로 회복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가만히 있는 게 어렵다면, 잔잔한 음악을 틀거나 짧은 명상 영상을 따라 해도 좋다. 실제로 명상과 멍때리기가 뇌 기능 회복과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뇌과학적 측면에서, 겉으로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수동적 쇼츠 시청은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더 나쁜 점은, 만약 쇼츠 시청이 중독으로 이어질 시 뇌의 기능까지 저하한다는 점이다.
반면,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은 우리 스스로가 뇌를 강화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이다.
결국, 겉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멈춤’이야말로 두뇌 건강을 지키는 가장 능동적인 선택이다. 작은 멈춤 하나가 뇌에는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By 양수빈 콘텐츠 오퍼레이터
Editing 민상식 기자
<참고 자료>
애나 렘키(Anna Lembke), 도파민 네이션, 흐름출판
Karpicke, Jeffrey D., and Henry L. Roediger III, The critical importance of retrieval for learning
Raichle, Marcus E., et al. , A default mode of brain function
mss@heraldcorp.com
![프롬프트의 신법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901.203c531a96884d4da174595cad521d59_T1.png?type=h&h=240)
![자산가의 저력은 하락장서 나타난다…위기 속 기회 찾는 ‘힘’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8/31/news-p.v1.20260831.a0fa168d036d4658b6cb03a0502c0de4_T1.jpg?type=h&h=240)
![“고3 딸 학원비 40만원만” 끝내 외면한 전처…자식 마저 버린 ‘나쁜 부모’와 싸우는 그들 [세상&플러스]](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8/29/news-p.v1.20260829.87d95bef732846b383020b75a70f53a5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