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건 입찰서 낙찰순번·물량비율 사전 합의

원형·나선형 파형관 입찰 장기간 경쟁 제한

공정위 “적격조합이라도 담합 땐 엄중 제재”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파형관 구매 입찰에서 낙찰예정자와 낙찰물량 비율을 사전에 합의한 조합과 사업자가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3개 조합과 7개 사업자의 파형관 입찰 담합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8억6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뉴시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뉴시스]

제재 대상은 한국합성수지파형관사업협동조합, 한국플라스틱기술연구사업협동조합, 한국피이관공업협동조합 등 3개 조합과 영진산업, 피앤아이, 세진엔지니어링, 신호, 그린오토테크, 코브인터내셔날, 오주산업 등 7개 사업자다.

공정위에 따르면 3개 조합은 2017년 1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진행된 파형관 구매 입찰 394건에서 낙찰예정자와 낙찰물량 비율을 사전에 합의했고 7개 사업자는 조합 간 담합 사실을 알면서 공동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파형관은 전력케이블을 감싸 보호하기 위한 주름진 형태의 플라스틱관으로, 표면의 주름 모양에 따라 원형과 나선형으로 구분된다. 사건 당시 파형관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공공입찰에는 중소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대신해 입찰에 참여하는 적격조합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번 제재 대상인 3개 조합은 회원사들의 동의를 받아 파형관 구매 입찰에 대신 참여한 뒤 낙찰받은 물량을 회원사에 배분하는 적격조합이다. 7개 사업자는 한국합성수지파형관사업협동조합 소속 회원사로, 조합 명의나 자체 명의로 입찰에 참가했다.

각 조합이 배분율을 합의한 후 높은 단가로 희망 수량을 투찰한 내역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각 조합이 배분율을 합의한 후 높은 단가로 희망 수량을 투찰한 내역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조사 결과 한국합성수지파형관사업협동조합과 한국플라스틱기술연구사업협동조합은 2018년 6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진행된 원형 파형관 전국·지역제한 입찰 384건에서 사전에 낙찰 순번을 합의한 뒤 이에 따라 투찰했다.

각 조합은 연도별 물량 배분 비율을 먼저 정한 뒤 입찰 공고 시점까지의 누적 계약금액을 계산해 합의한 배분 비율에 미달하는 조합을 낙찰예정자로 정했다. 낙찰예정자로 정해진 조합은 상대 조합에 들러리 투찰을 요청했다. 요청받은 조합은 과거 낙찰받은 투찰률보다 높은 투찰률로 투찰했다.

그 결과 384건의 입찰 가운데 한국합성수지파형관사업협동조합이 204건, 한국플라스틱기술연구사업협동조합이 175건을 낙찰받았다. 나머지 5건은 담합에 가담하지 않은 사업자가 낙찰받았다.

3개 조합은 2017년 1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진행된 나선형 파형관 지역제한 입찰 10건에서도 각 조합의 회원사 수에 비례해 낙찰물량을 배분하기로 합의했다.

해당 입찰은 참가자가 공급단가와 희망 배분 물량을 제출하면 낮은 단가를 낸 사업자 순으로 물량을 배분하는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실제 10건 모두에서 사전에 합의한 비율과 유사하게 물량을 배분받았다.

한국합성수지파형관사업협동조합 소속 7개 회원사도 조합 간 담합 사실을 알면서 공동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조합 담당자의 요청을 받아 조합을 대신해 들러리로 투찰하거나 조합을 통해 입찰에 참가했고 조합이 담합으로 확보한 물량을 배분받았다.

공정위는 이런 공동행위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저해한 법 위반행위라고 판단했다. 다만 담합을 주도한 3개 조합이 계약금액의 일부인 2%만 수수료로 받아 부당이득 규모가 낮았던 점을 고려해 최종 과징금액을 결정했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운영하는 입찰담합 징후분석 시스템을 통해 담합 징후를 포착해 조사·제재한 사례다.

공정위는 “공공기관 자체 발주 입찰에서 장기간 은밀하게 유지된 담합을 직권으로 인지해 적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중소기업을 대신해 입찰에 참여하는 적격조합이라도 입찰담합을 하면 제재 대상이 되며 공동행위를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담합 사실을 알면서 가담한 회원사 역시 예외 없이 제재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최근 입찰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과징금 하한을 대폭 상향한 만큼 향후 유사한 법 위반행위가 적발되면 더욱 엄정하게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