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까지 덮친 폭염
손 선풍기에 양산 써도 역부족
얼음 녹은 커피·젖어버린 셔츠
시장 매출 반토막…채소 직격탄
4일 오전 8시 기준 30도를 넘어선 서울 도심은 아침부터 뜨거운 공기로 달아올랐다. 출근길 시민들은 손선풍기와 양산, 차가운 음료를 손에 쥔 채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불과 몇 분 걷지 않아 얼굴에는 땀이 맺혔고 옷은 축축하게 젖었다.
이날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는 올해 처음으로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 오전 8시30분께 찾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출근길 직장인들의 손에는 손선풍기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양산을 펼친 시민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사람들은 연신 손부채질하며 “아이고 더워”라고 탄식했다.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던 박재민(35) 씨는 손에 든 커피를 들어 보이며 “산 지 10분밖에 안 됐는데 얼음이 거의 다 녹았다”며 “이런 날은 점심 먹으러 나가는 것도 일이다. 그냥 배달시켜 먹는 게 낫다”고 말했다.
목에 넥쿨러를 두르고 양산을 쓴 채 이동하던 직장인 이모(34) 씨도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지하철을 기다리다 보면 옷이 금방 젖는다”며 “땀을 닦으려고 전용 티슈를 들고 다니는데 요즘은 하루에 3~4장은 기본으로 쓴다”고 했다.
병원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는 정효순(66) 씨는 부채를 펼친 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정씨는 “이따 낮이 되면 더 더울 것 같아 병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일찍 나왔다”며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하고 막혀 어지럽다”고 토로했다.
같은 시간 강남역과 양재역 일대에서도 폭염을 버티기 위한 시민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인근 카페에는 이른 시간부터 음료를 사려는 직장인들이 줄을 섰다. 양재역 인근 개발회사로 출근하는 박민재(29) 씨는 “평소에는 회사에서 모닝커피를 타 마시는데 오늘은 도저히 출근길을 견디기 힘들어 몇 년 만에 카페에서 음료를 사 들고 간다”며 “점심때는 더 더울 것 같아 커피를 두세 잔은 마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폭염은 출퇴근 방식까지 바꾸고 있었다. 강남역에서 만난 직장인 김민설(31) 씨는 “처음에는 여벌 옷까지 챙겨 다녔는데 이제는 귀찮아서 택시를 타는 날이 많아졌다”며 “시원한 음료 하나 들고 이동하고 싶어도 버스에는 반입이 어려워 여러모로 택시가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더운 날엔 휴가를 가는 것보다 시원한 회사에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행은 하반기로 미뤘다”고 했다.
강남역 인근에서 30년째 구두수선점을 운영하는 강정언(73) 씨는 폭염에 손님 발길까지 끊겼다고 했다. 강씨는 “여름 휴가철인 데다 아침부터 이렇게 더운 날은 오던 단골손님도 안 온다. 오늘은 손님이 한 명도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원래 오후 7시까지 하지만 오늘은 너무 더워 3~4시면 철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폭염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시민들의 출퇴근길뿐만이 아니었다. 오전 8시께 찾은 서울 송파구 가락도매시장 청과 노점 골목은 이미 ‘불판’을 방불케 했다. 햇빛을 가려주는 지붕이 없어 햇빛은 그대로 골목으로 쏟아져 뜨겁게 달궜다. 강한 햇빛이 땅에 반사돼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새벽부터 장사를 시작한 상인들은 파라솔 아래 몸을 숨긴 채 연신 부채질했다. 납품 물건을 옮기는 작업자들의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폭염 때문에 매출은 말 그대로 반토막이다. 채소가 빠르게 시들면서 판매 물량 자체를 줄일 수밖에 없어서다. 가락시장에서 34년째 청과점을 운영하는 김모(74) 씨는 “여름에는 물량을 평소 절반만 받는다”며 “봄·가을에는 하루 매출이 200만원 정도지만 여름에는 100만원 정도다. 안 그러면 시들어서 못 판다”고 말했다.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던 상인 유모(68) 씨는 “여름에는 빨리 못 팔면 적자다”라며 “새벽 4시부터 나와서 장사를 하는데, 오후 2~3시까지는 최대한 다 팔려고 한다. 오후까지 되면 너무 더워서 젖은 수건, 아이스 링까지 다 해야 한다”고 했다.
가락시장 환경미화 직원도 폭염으로 인해 ‘비상’이다. 서모(60) 씨는 “식염 포도당을 챙겨 다니면서 기운이 떨어질 때 하나씩 먹는다”라며 “특히 햇빛 가림막이 없는 노점 골목은 오전에 바짝 치우고, 오후부터는 지붕이 있는 쪽으로 옮긴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에서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것은 올해 6월 1일 폭염특보 체계 개편 이후 처음이다. 폭염중대경보는 폭염특보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다. 해당 지역에서 이틀 이상 일최고체감온도 35도 이상이 관측된 가운데 일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 또는 일최고기온 39도 이상의 극단적인 고온이 예상될 때 발령된다. 전새날·이영기·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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