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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오른쪽 위에 놓인 시계가 밤 11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은은 차갑게 식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두 달 전에서 멈춰버린 대화가 화면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와 헤어진 지 두 달째였다. 4월에 만나 6월에 헤어졌으니 사랑했던 시간도 고작 두 달 남짓이었다. 둘 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였다. 지은 역시 첫 만남 이후 자연스럽게 그와의 다음을 생각했다. 그럴 만큼 좋았다.
문제는 싸우고 난 뒤였다. 그는 난처하거나 불리한 상황이 생기면 입을 닫았다. 처음에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를 기다리고, 이틀을 기다렸다. 그러나 침묵을 끝내는 사람은 늘 지은이었다. 그가 마음의 문을 닫을 때마다 지은이 먼저 그 앞에 가서 두드려야 했다.
결국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꺼낸 것도 지은이었다. 더는 누군가의 침묵 하나 때문에 가슴 위에 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헤어진 뒤 한동안은 정말 가벼웠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낮에는 그랬다. 밤이 되면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걸까.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달라졌을까. 그 사람도 가끔 나를 생각할까.
이런 생각들을 친구에게 털어놓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유튜브 타로였다. 그가 생각나는 밤이면 아무 영상 하나를 골라 카드를 뒤집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동안은 꽤 위로가 됐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거 알아요? 요새 AI가 궁합 정말 잘 봐주는 거?”
불현듯 지난 점심 때 같은 부서 k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은은 곧바로 그와 자신의 생년월일을 만세력에 넣어 사주 명식을 뽑았다. 두 장을 캡처해 AI 대화창에 올렸다.
-두 사람 궁합이 어떤지 봐줄래?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는 관계예요. 다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가 보여요. 한쪽이 문제를 바로 확인하고 해결하려 한다면 다른 한쪽은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어버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지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 두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정확했다.
-그럼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이 관계는 끝인 거야? 그 사람도 나를 그리워하긴 할까?
이제 궁합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은이 알고 싶은 건 그 뒷말이었다. 그가 자신을 그리워하는지. 자신이 사랑했던 만큼 그도 자신을 사랑했는지. 사람에게는 차마 묻지 못할 말을 AI에게 묻고 있었다.
-상대 역시 관계가 끝난 뒤 감정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자존심이 강하고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이라 그리움과 연락 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생각하고 있어도 먼저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은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절대 그가 먼저 연락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만나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 누구보다 지은이 잘 알고 있는 거였다.
‘감정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이 말 때문에 지은은 다시 입력창을 열었다.
-혹시 재회 가능성은? 있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날짜는 언제야?
몇 개의 날짜가 화면에 나타났다. 1순위, 2순위, 그리고 3순위까지. 지은의 시선이 3순위에서 멈췄다.
-3순위: 9월 3일. 과거의 감정이 다시 떠오르거나 연락의 계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날입니다.
순간 지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 날은 지은의 생일이라 왠지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마 카카오톡 상단에 자신의 이름이 그에게도 뜰 것이다. ‘오늘 생일인 친구.’ 로. 그건 생일이라는 핑계 뒤로 숨어 얼마든지 말을 걸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우연이겠지만 너무 절묘했다. 지은은 화면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입력창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럼 9월 3일에 그 사람이 먼저 연락할 가능성을 굳이 숫자로 말하면 몇 퍼센트 정도야?
-정확한 통계적 확률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제공해주신 정보와 관계의 흐름을 토대로 추정한다면 약 87%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먼저 연락하기보다는 상대의 행동을 기다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지은은 ‘87’ 이라는 숫자를 오래 바라봤다. 100퍼센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될 만큼 충분히 높은 숫자였다. 별안간 가슴이 가벼워졌다. 87이라는 숫자가 조금 전까지 막연하기만 했던 기다림에 모양을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기다림에도 끝이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날 정말 연락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너무 반가워하거나 기다렸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좋아요. 상대가 먼저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이는지 지켜보세요. 지금은 질문자님이 먼저 움직일 때가 아니에요.
지은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래. 이번에는 절대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 생각을 하는데 문득 이상한 충동이 일었다. 지은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새대화창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주 명식도, 생년월일도 올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질문을 입력했다.
-두 달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싸우면 제가 말을 안 하는 편이었고, 그럴 때마다 여자 친구가 먼저 연락했습니다. 결국 여자 친구가 지쳐서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여자가 많이 생각납니다. 제가 먼저 연락해야 할까요?
-상대가 반복적으로 먼저 관계를 회복해왔다면 이번에는 질문자님이 먼저 연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는 이미 충분히 노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자존심보다 솔직한 표현이 먼저입니다.
지은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는 기다리라고 했다. 이번에는 먼저 연락하라고 했다.
-하지만 거절당할까 봐 두렵습니다. 기다리면 그 여자가 먼저 연락하지 않을까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이전에도 상대가 먼저 연락해왔다면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먼저 연락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입니다.
지은은 화면에서 손을 뗐다. 사람은 같았다. 관계도 같았다. 바뀐 것은 질문하는 사람 입장뿐이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입력하지 못했다. 그러다 처음 대화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넣었다.
-아까 연락 올 가능성이 87%라고 했지? 왜 그랬어?
-87%는 실제 미래를 예측한 통계적 확률이 아니에요. 제공해주신 정보와 질문의 맥락을 바탕으로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추정치입니다.
-그럼 9월 3일은?
-마찬가지입니다. 9월 3일 역시 실제 사건의 발생을 예측하거나 보장하는 날짜는 아닙니다.
지은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가 아직 자신을 그리워한다는 말. 그가 자존심 때문에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것들은 하나의 미래처럼 보였다. 아직 오지 않았을 뿐, 어딘가에 이미 정해져 있는 일처럼. 하지만 아니었다. AI는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지은이 질문 사이사이에 흘려놓은 마음을 주워 모아 가장 그럴듯한 모양으로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지은은 마지막으로 입력창에 한 문장을 썼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그 질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원하신다면 지금까지의 대화를 바탕으로 질문자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함께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지은은 처음으로 답변을 끝까지 읽지 않고 대화창에서 나왔다. 창밖은 캄캄했다. 유리창 위로 희미한 자신의 얼굴이 떠 있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그토록 알고 싶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아니었다. 답은 이미 지은 안에 있었다. 다만 자신의 입으로 말하면 믿을 수 없어서 누군가 대신 말해주기를 기다렸을 뿐이었다. 타로 카드가, 운명이, 마침내는 AI가 대신 말해주기를.
지은의 시선이 엎어놓은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신탁이 필요했던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신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신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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